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전기 작가인 바자리(Giorgio Vasari 1511-74)는 자기가 쓴 ‘르네상스의 미술가 열전’(1568)에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미술의 절정에 이룬 화가는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라고 두 화가를 극찬하며 앞으로도 이들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화가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후배화가들은 이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했다. 기존화가의 화법을 모방하라는 것은 잘된 권고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만큼 그들의 그림은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라파엘로는 당대 최고의 미술가임을 강조 하면서 설명을 덧붙이기를 화가라면 누구나가 인간과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라파엘로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조화로움의 극치에 달하게 하여 그림의 수준을 정점에 올려놓았다고 하였다.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은 많지만‘라 포르나리나’(1520)라는 그림은 여러 면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주제 ‘라 포르나리나’ 라는 것은 이탈리아어의 ‘빵집 딸’이라는 뜻이며 그 모델의 본명은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이다. 그런데 화가가 그 모델의 본명을 제목으로 하지 않고 ‘빵집 딸’이라는 주제를 붙인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화가는 어떻게 해서 그녀를 모델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는가가 궁금해진다. 그녀의 집은 교황청 근처에서 빵집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라파엘로가 교황청으로 일을 하기위해 등청하다가 우연히 빵집 마당의 샘물에서 발을 씻고 있는 마르게리타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가 바로 자기가 찼고 있던 이상적인 모델상의 모습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그만 가던 길을 멈추고 숨어서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자기 그림의 모델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재확인하고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는 것이다. 그녀의 무엇이 라파엘로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였는가에 대해서는‘라 포르나리나’의 그림에 표현된 그녀의 생김새와 그 얼굴의 표정을 보노라면 답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즉 그녀의 눈동자는 겁이 날 정도의 강한 정열을 내뿜고 있지만,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애틋한 표정에서 정과 친밀 그리고 진실성을 느끼게 하는데 이것은 화가가 그녀의 눈에 포로가 되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마르게리타의 그림을 놓고서는 유명화가들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그 그림의 주인공의 얼굴을 재현하는가 하면 미술사상 보기 드문 화가와 모델의 사랑 이야기도 남겼다 그래서 작가들은‘라파엘로와 포르나리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로마 일화집’(1928년 간)에 수록될 정도의 일화를 남겨 그 그림은 더욱 흥미를 느끼게 한다. 즉 화가는 그녀의 눈의 매력에 녹아버린 것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자기 생명까지 녹여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르게리타를 향한 라파엘로의 따뜻한 시선은 그가 그리는 그림에 얼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는 그녀를 만나기 전의 그림과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 간에 같은 주제이지만 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마르게리타를 만나기전에 그린 ‘피렌체의 마돈나’ 등에서는 뜨거운 사랑과 적극적인 관용의 분위기나 표정은 찾아 볼 수 없는데 그녀를 모델로 그리기 시작한 ‘폴리뇨의 마돈나’(1511-12)를 위시한 ‘시스틴의 마돈나’(1513-14), ‘리넨 창의 마돈나(1513-14)’, ‘대공의 마돈나(1518-19)’, ‘물고기의 마돈나(1514)’, ‘의자의 성모(1516)’, ‘베일의 성모(1514-16)’ 등의 그림에서는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마돈나로서의 어질고 관용성이 넘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햇빛처럼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 주는 듯 한 그 눈빛이 같은 것으로 두 그림은 같은 모델이라는 것이 확실하며,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해지자 ‘의자의 성모상’은 마치 라파엘로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었다. 그래서 후세의 화가들도 ‘의자의 성모상’을 자기 그림에 인용하였는데 그 좋은 예가 프랑스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 1904-1989)가 그린 ‘구아달페의 성모’(1959)라는 그림이다. 라파엘로는 여러 장의 마돈나 그림을 그리면서 매 그림마다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써서 마돈나의 이미지 부각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마돈나의 모습을 성스럽게 묘사하는 것이 주목적인 그림이기 때문에 마르게리타의 참모습이 표현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오로지‘라 포로나리나’뿐이며 그것이 라파엘로가 사망하기 전의 그녀의 그림으로서는 마지막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게리타는 수줍은 듯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있으나 가슴이 그 손으로 다 가려진 것은 아니고 이것이 유방을 받치는 것으로 작용하여 관자의 눈을 그 아름다운 젖가슴에 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를 가린 엷은 천은 워낙 엷은 것이어서 배꼽이 그대로 비쳐 보인다. 허리 아래는 두툼한 천을 둘렀는데 왼손을 다리 사이에 가져가 전형적인 ‘정숙한 비너스'의 자세를 만들고 있다. 그림은 고결한 여인임을 애써 강조하려는 듯하다. 이렇게 관능과 정숙의 대위법적 긴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여인의 눈은 관자 쪽을 향하고 있다. 살짝 미소를 띈 채, 이 여인이 우리를 유혹하려 그렇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그녀의 다정한 시선과 미소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화가를 향한 것이다. 여인이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관능과 정숙의 뉘앙스를 동시에 풍기는 것은 이처럼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남자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이 사랑스런 여인의 왼쪽 팔에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사인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의 사람임을 강조 하였으며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무릎까지 그렸다. 당시 일반인의 초상을 무릎까지 그린 예가 없었음을 상기할 때, 이 작품은 화가가 사랑하는 애인에게 보낸 최고의 찬사로 생각된다. 이렇듯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는 화가와 모델이라는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변했으며 그것도 라파엘로가 사망할 때까지 12년간을 지속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래서 후세 화가인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는 바자리의 글에 감명을 받아 라파엘로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생애를 연작으로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라파엘로와 포르나리나’(1814)라는 그림이다. 라파엘로가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라 포르나리나’를 그리다가 잠시 쉬는 틈을 타 그녀를 포옹하고 있다. 화가가 그리던 이젤의 왼쪽에는 ‘의자의 성모’의 그림이 걸려있다. 바자리는 라파엘로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지나친 여인과의 육체적 쾌락에 빠져 쾌락발열(快樂發熱)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라파엘로는 작업을 하다가도 없어지면 여인과 만나곤 했으며 돌아와서는 피곤해서 일을 못하고 쉬곤 했다는 것이다. 결국 라파엘로는 마르게리타의 평인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매혹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까지 바쳤던 것이다.
[글, 사진 / 문국진 박사]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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