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언어적(非言語的)자기표현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것은 울음이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운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능력이다. 이렇게 고고의 소리를 내며 태어나는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이것을 의학적으로 해석하자면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몸에서 나와 혼자서 독립된 한 생명체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명유지에 절대필요한 산소를 얻기 위한 폐 운동인 것이다. 또 이것을 문화적으로 해석하자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으로 자기는 이렇게 건강하여 독자적인 호흡을 할 수 있으니 안심 하라는 신호인 동시에 이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어버이에게 감사한다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즉 인생 출발의 첫 신호로써의 고고의 소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위험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인간사회와 더불어 착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사표시로써의 의의를 지닌 신호인 것이다. 울음과 웃음, 그 표정의 차이와 공통점 생후 5주경이 되면 어린애는 혼자 미소 짓고 중얼 소리를 내거나 목을 굴리기도 하며 울기는 하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한다. 만족할 때 목을 굴리고 불만일 때는 울게 된다. 즉 어린이는 우는 것과 미소 짓는 것으로 어미와 대화하여 의사가 소통 되는데 우는 것으로 어미를 끌어들이고 미소로 어미의 혼 줄을 뽑아 지기 주변을 떠나지 못하게 하여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의 눈길을 어린이에게서 뗄 수 없게 만든다. 어린애가 소리 내며 웃기 시작하는 것은 생후 4-5개월이 지나 어머니를 알아보는 무렵부터이며 이때가 되면 깔깔 소리 내며 웃게 된다. 어린애의 웃음과 울음의 두 표현 동작의 의미는 전혀다르지만 그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 어린애가 울 때 얼굴의 근육은 긴장되고 피부는 붉게 물들고 눈물을 흘리며 입이 벌어지고 입술을 좌우로 당기며 세찬 숨을 내 쉬어 울음소리를 낸다. 어린애가 즐거워 소리 내어 웃을 때의 얼굴 표정도 울 때의 표정과 같으며 눈물도 나오는 수가 있는데 단지 다른 것은 우는 소리와 웃는 소리의 차이 뿐이다. 이렇게 울음과 웃음의 감정 표정이 유사하다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즉 웃음이라는 동작은 울음이라는 감정 반응의 이차적인 신호로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는 것과 웃는 것의 경계의 폭은 매우 좁아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것이 어린애들의 특징인데 이것이 성장하면서 그 경계의 폭은 점점 넓어진다. 그러나 그 기본 틀은 유지된다. 이렇게 어린이의 어머니와의 감정교류는 웃음과 울음으로 시작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어머니의 어린애와의 교신은 눈으로 하게 되며 어린애는 이를 감지한다. 도쿄대학의 하라지마 교수(1996)의 실험기록을 보면 자기의 아들이 생후 5개월이 되자 자기의 어미를 알아보고는 옆에 없으면 울어대서 잠시도 떨러지려하지 않아 가사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 교수는 하는 수 없어 그 어머니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옆에다 놓으니 울음을 그치더라는 것, 호기심에서 그 사진의 거리를 조종하여 본 결과 50cm 이내에서는 알아보고 가만있지만 그 거리를 멀리하면 알아보지 못하고 울더라는 것이다. 더욱 호기심이 난 교수는 사람 얼굴을 그려 옆에 놓았더니 사진과 같은 반응을 보여 이번에는 얼굴 그림에서 코나 입을 지워서 놓아도 별 반응이 없으나 양 눈을 지우고 코와 입은 그대로 두었지만 어린애는 울어댔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는 어머니의 눈을 보고 인식하며 그것도 50cm가 넘는 거리라면 어린이의 시력으로써는 인식하지 못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림으로 보는 눈빛과 거리의 중요성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의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눈초리의 심리거리를 8종류로 구분한다. 심리거리란 사람과 사람이 대할 때의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밀접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이의 대인관계의 거리로서 0-45cm를 말하는 것으로 부부나, 연인, 아주 다정한 부모 자식 간과 같이 호흡하는 입김이 닿아도 무방할 사람들의 관계에서 보는 거리이며, 다음은 개체거리(45-120cm)로써 형제자매나 다정한 친구 사이로서 서로 손을 맞잡고 거를 수 있는 사이의 거리를 말하며, 다음은 사회거리(120-360cm)로써 업무상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거리로써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고, 다음은 공중거리(360cm 이상)로써 개인적인 관계와는 무관한 거리를 말한다. 이상의 4종류를 내측과 외측으로 나누면 8종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과 사실로 볼 때 어린이는 어머니와 밀접거리를 유지하여야만 어머니를 인식할 수 있으며 특히 어머니의 다정한 눈빛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눈빛과 어린이와의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현시해주는 그림이 있어 살펴보기로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앨마 태디마( Sir Lawrence Alma-Tadema 1863-1912)가 그린 ‘지상 낙원’(1891)이라는 그림에서 침상위에 벌거숭이가 된 아기가 누워있고 어머니가 아기의 손에다 키스를 해주고 있으며 아기는 해맑은 웃음을 지우며 이를 반기고 있다. 아기의 눈과 어머니의 눈은 마주쳐 시선이 꼭 들어맞고 있으며 어머니와 아이의 거리는 밀접거리에 있다. 이에 도취된 어머니의 표정에서 지상에 있는 어떤 행복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 인생 최대의 행복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화가는 이것을 진정 ‘지상 낙원’ 이라 표현한 것이다. 아기와 어머니의 또 다른 그림 하나를 보기로 한다. 영국의 화가 오차드슨(Sir William Quiller Orchardson 1832-1910)이 그린 ‘아기 도령님’(1886)이라는 그림을 보면 날씨가 더워서인지 어머니가 누어있는 어린이에게 부채를 부쳐주고 있다. 그렇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만면에 희색을 띠고 미소를 지우면서 조금이라도 어린이가 더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표정이다. 어머니와 애기의 거리는 밀접거리를 벗어나 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눈초리는 아기에 쏟고 있으나 아기는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채에서 오는 바람이 있어 좋기는 하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 어린애로서는 불안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이다. 아기와 어머니의 표정교류에서 싹트 커뮤니케이션 이러한 어머니와 아기를 그린 두 그림에서 어린애는 어머니의 얼굴에서도 눈빛을 보고 자기 보호자로서의 어머니를 인식하고 그것도 눈초리의 친밀거리 내에 있어야 함을 알게 되어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로서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또 아기를 우유로 키우기보다 모유로 키우는 것이 아기에게는 여러 가지로 유익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는데, 아기에게 필요한 면역체를 위해 우유에는 없는 성분이 모유에는 있기 때문에 신체발육과 질병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젖을 먹일 때 어머니는 아기를 가슴에 안고 젖꼭지를 물리게 된다. 그러면 어머니와 아기는 자연 밀접거리 내에 들게 되어 눈과 눈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아기는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분명 자기가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경험한 어머니의 심장고동임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어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빠는 그 순간에 아기로서는 최대의 쾌적감을 느끼게 된다. 문화가 생겨나는 것은 보다 더 쾌적을 바라는 인간 염원의 산물이다. 쾌적은 느껴본 사람만이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창출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의 창출을 이해한다면 그 출발점은 바로 아기와 어머니의 표정의 교류에서 싹튼 커뮤니케이션이 영향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머니의 정성어린 눈빛과 아기와의 밀접거리에서의 표정교류는 그 본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 창달에도 크게 영향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문국진 교수]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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