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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르느와르, 행복을 그리다 - '르누아르展'

엠디저널 | 기사입력 2014/01/03 [09:10]

[Gallery] 르느와르, 행복을 그리다 - '르누아르展'

엠디저널 | 입력 : 2014/01/03 [09:10]
오랜만에 서양 미술전을 보게 되었다. 주로 미술전은 학생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여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전에 가면서 ‘벌써 여름방학이 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유별나게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전국이 찜통이라고 기상대에서 연일 방송이다. 서울은 오전인데도 한증막이다.

7월 4일 토요일, 역시 전시장은 학생들로 붐빈다. 입장료는 대인은 12,000원인데 경로는 무료다. 그런데도 노인 관람객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나만 학생들 틈에 끼어 밀려가며 감상했다. ‘노인들은 주중에 오는가보다’라고 자위해 본다.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의 그림은 한국에서 생소한 것은 아니다.
2006년 12월 22일부터 2007년 3월 26일까지 조선일보사 주최로 미국 4대 미술관인 ‘클리블랜드관’이 소장 하고 있는 서양 근, 현대사 거장들의 명품 94점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라는 제호 아래 전시 했다. 그 당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았으며 그 중에서 ‘르누아르’의 ‘로맨라코 의 초상’을 의미 깊게 보았고 ‘라코 가(家)’의 딸 초상화이며 최초로 ‘르누아르’의 서명과 날짜가 들어 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빛과 색채와 화려한 조화를 통해 그려진 예쁜 옷을 입은 매력적인 소녀의 초상, 따스함과 귀여운 그림이었다. 당시 전시에는 여러 화가들의 작품들이 출품 되었는지라 ‘르누아르’의 작품을 흡족히 감상하기에 부족하였으나 오늘의 전시는 우리나라 최초로 120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의 초년기, 전성기, 만년의 작품들을 대할 수 있으며 그의 삶과 철학과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컸다.

‘르누아르’는 행복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두움이 없고 평범한 생활상을 소재로 몽환적인 터치로 그렸다. ‘그림은 벽을 장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화려해야 하고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 속에 ‘르누아르’의 예술에 대한 철학이 담겨진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그림을 그려야한다고 평소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림은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은 어둡고 힘들지만 그의 그림세계는 삶과 기쁨이 넘치고 밝고 화사하고 따스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없다. 그의 그림엔 슬픔이 없다. 그것이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만의 성향이었다. ‘르누아르’ 작품 속의 세상은 꿈의 세상이며 어떤 고통도 없고 각자의 위치에 마냥 행복한 모습들뿐이다.

온화하고 몽환적인 색조, 르누아르의 전성기를 이루다

1883년에 그린 ‘시골 무도회’의 작품을 보면 두 남녀가 몸을 밀착 시키고 남자의 팔에 안겨 돌아가는 여인의 발그레 한 볼, 상기된 얼굴은 정에 겹고 지긋한 시선, 춤에 취해있다. 이 그림이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시선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이 여인은 ‘르누아르’의 아내인 ‘Aline’ 이고 남자는 친구인 ‘폴 로트로’라고 한다. 

1892년에 프랑스 정부는 ‘르누아르’에게 ‘룩셈부르크’ 미술관에 전시될 작품을 의뢰한다. 그때 심혈을 들여 그렸던 그림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다.

비로소 진정한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고 수집가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가 도래 한다. 그리고 ‘테오도르 드 바제가’ 같은 영향력 있는 젊은 비평가들을 만나게 되고 ‘인상파’의 선구자로 존경도 받는다. 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혼심을 기울여 그렸다. 같은 소재로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총 여섯 점이나 그렸다. 이 완성된 작품 중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하나를 골랐다 한다.

그림은 색채를 엷게, 부드럽고 거칠지 않고 온화하고, 색조의 조화가 몽환적이다. ‘르누아르’적인 전성기 그림이다. 내용은 일상적인 흔한 분위기의 소재이다. 두 소녀가 피아노 앞에, 한 소녀는 의자에 앉아 한손으로 악보를 한 손으로는 피아노 건반위에 놓고 있으며 뒤에 선 다른 소녀는 핑크색 흰 점의 물방울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둘 다 열심히 악보를 보고 있다. 두 소녀들은 너무나 평온하고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안정된 구도 속에 행복한 분위기이다.


여성 통해 영감 얻어 세상 아름답게 표현

그의 그림이 알려지기 전 생활이 너무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에는 가난이 없고 누구도 불행하거나 슬픈 표정은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렸다. 그게 바로 그가 그리는 목적이고 고집스러운 철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40세가 되어서야 무려 19세 연하인 ‘Aline’이란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대게가 다 여성상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여성을 통하여 영감을 얻고 중요한 소재로 자리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미적인 절대적인 가치를 여성상에서 찾았고 그의 예술을 발전시켜 갔다고 한다. 초기에 생활이 너무도 어려워 전문 모델을 구하지 못해 그의 친구의 소개로 ‘Lise’ 란 겨우 18세 소녀를 소개 받고 그의 초기 작품에 나오는 여인은 거의 다 그 소녀였다고 한다.
 
평소 ‘르누아르’의 그림에 대한 사고는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하여주는 그림을 그려야 하고 풍경화를 그릴 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경치 속에서 놀고 싶다는 충동을 가지도록, 그리고 관능미 넘치는 누드화를 그릴 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껴안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전하다

1890년대 말년에는 지병인 관절염이 점점 악화되어 손을 못 써 붓을 손에 묶어 그리는 불편한 나날을 보냈다. 그 이후 퇴행성관절염이 심해져서 보행조차 힘들고 휠체어에 의존하고 살았다.

유일한 기쁨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말년에는 아내마저 잃고 자식도 전쟁으로 부상하여 돌아오고 불행한 나날이 있었으나 그의 그림에서는 전혀 그런 티 하나 없고 오로지 행복한 그림들뿐인데 아마 괴로움의 돌파구를 그림 속에서 찾은 것이였다고 전한다. 모든 화가들도 가난 속에 살았지만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그림인 ‘물랭드라 갈 레트의 무도회(1876년)’는 ‘오르세 미술관’ 소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중에 하나이며 무려 7천8백1십만 달러 (한국 돈 976억 원)에 경매 되었다. 천상에서 이 소식을 르누아르가 알았다면 그도 기절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1876년 인상파 그룹이 주최한 경매에서 ‘르누아르’의 작품 20여점이 고작 2,000프랑에 팔리고 한때는 ‘르누아르’ 작품들은 몇몇 미술 비평가들에 가혹한 혹평을 받았었고 ‘르누아르’가 그린 우아함과 관능미 넘치는 작품을 보고도 부패한 육체의 고기 덩어리를 그리는 작가로 전락 시키고 있었다. 허나 당시 미술품 수집가인 ‘빅토르 쇼케’를 만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라 ‘쇼케’의 후원을 받고 그와 인간적으로 우정을 쌓아간다. ‘물랭드라 갈레트의 무도회’도 ‘쇼케’의 주문에 의하여 그린 그림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하였고 평생 5,000여점의 많은 작품을 남기고 갔다. 1919년 12월 3일 그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묘비 추모 문에는 ‘예술의 끝은 바로 환희다’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평생 그가 낙천적인 마음을 바탕에 두고 소박한 행복을 그림 속에 추구하며 인류에게 행복한 그림만을 선사하고 간 위대한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며 전시장을 나왔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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