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기술 또는 예술(Ars Moriendi)
홍석기 칼럼니스트 | 입력 : 2020/06/01 [11:01]
“15세기 서유럽사회에서는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라는 소책자가 크게 유행했다.
이는 ‘죽음의 기술’이라는 뜻으로 ‘죽음을 슬기롭게 준비하고 또 맞이하는 방법을 거울처럼 비춰 주는 책’을 줄여서 쓴 말이다 슬기롭게 죽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바른 삶을 영위하는 방법, 곧 ‘삶의 예술(아르스 비벤디(Ars Vivendi)’를 가르쳐 주고 있다. 삶의 험난한 항해에서 풍랑을 피하고 바른 행실을 지키기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안띠꾸스 Antiquus, 2005, 6~7월, Vol. 3)
전 세계 지구촌에 위협을 가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지 3개월이 지났다. 550만명이 감염되고, 35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의 재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와중에 더욱 힘든 것은 정신적 건강의 위기(Mental Health Crisis)가 올 수 있다는 거다.
이런 와중에 다시 생각하는 게, “잘 늙어가고 잘 죽는 것(Well-Aging and Well Dying)”이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결국 모두가 이르게 되는 죽음을 앞에 두고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 가는 건 모든 생물(生物)의 자연적인 이치이다.
어떤 이는 달리며 경쟁하고, 숨을 고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어떤 이는 하고 싶은 일을 바라고 소망하고 희망하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재와 흙이 된다.
어떤 사람은 인류에 커다란 흔적(痕迹)을 남기고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살다가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본의 아니게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하여 오랜 기간 동안 불편하게 살기도 하고, 고의로 남을 못살게 굴며 타인으로 하여금 원망과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자기만의 만족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도 있고, 폭 넓은 아량과 희생정신으로 낯 모르는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도 있다.
죽음에 이르는 기술과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예술의 차이가 무엇일까?
매일 매 순간, 어떻게 존재하는 게 바람직한 생활이며 삶의 모습일까? 배불리 먹고 즐겁게 놀면 행복하고,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남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면 성공하는 삶일까? 쉽고 간단하고 편하게, 한가로운 시간을 적당히 때울 수 있으면 좋은 팔자를 타고 난 걸까
그래서 이젠, 죽음에 이르는 기술도 터득해 보고 싶다.
무덤에 들어 가거나 재가 되는 순간에 혼란스럽지 않고, 아쉽지 않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기 위한 바람을 정리해 두고 싶다.
그래서 남은 시간에 철저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단 한 간을 살아도 완전하게 존재하고 싶다. 깔끔하게 늙고 싶다.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고 이마가 벗겨져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싶다.
누구와 마주 앉아도 환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싶다. 오랫동안 만면의 미소를 짓고 싶다.
누구든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편안한 마음으로 된장찌개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다.
마음대로 지껄이는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고 싶다. 아주 잘 살아 온 것처럼 곱게 늙고 싶다.
구차한 변명 늘어 놓고 싶지 않다.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지 않다. 불안하게 살고 싶지 않다. 도청이 두려워 눈치보면서 여기 저기 살피고 싶지 않다. 두리번거리며 흔들리고 싶지 않다. 움직일 때마다 조심하고 주의하고 싶지 않다.
어디에서고 누구에게도 자유롭고 싶다. 경찰서와 검찰청 앞에서 불안해 하지 않고 싶다. 더 욕심을 내다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얻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을 자주 드나들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싶다. 고매한 인격으로 보여지고 싶다.
우아한 자태를 보이며 걷고 싶다. 어깨를 쫘~악 펴고 활기차게 걷고 싶다. 곁눈질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누구든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고 싶다. 좋은 글과 멋진 책을 많이 읽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오래된 의견들에 귀 기울이고 싶다. 두꺼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환희를 느끼고 싶다.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수필을 읽고 시어(詩語)를 음미하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다. 예쁜 말을 하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면서, 향기 나는 글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때로는 혼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싶다, 그 때 갑자기 나타난 친구가 소주잔을 기울여 주며 박수를 쳐 주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 지구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 내 편 네 편 가르며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죽고 싶다.
축복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오늘을 잡으시라!(Carpe die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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