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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은빛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대산’

김은식 | 기사입력 2014/03/14 [14:10]

또 새로운 은빛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대산’

김은식 | 입력 : 2014/03/14 [14:10]

지금은 비록 울창한 숲길은 아니어도 숲길을 걸을 때는 언제나 그러하듯 어머니의 가슴 속에 모정(母情)이라는 포근함에 안기는 기분이 들게 하고 어느 산이나 정상에 이르면 희망과 용기의 파란하늘을 등에 진 아버지 같은 고목나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반기는 듯하다.

겨울밤이 길어서 일까  요즘 들어 밤마다 영화를 본다.
하나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과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며 액션, 도망자, 등등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잘(?)하고 추상과 판타스틱을 넘나든다. 아마도 내년쯤이면 아카데미 연기부문 노미네이트에 내 이름이 오르지 않을까  하지만 네가 출연하는 영화는 얘기해주기도 낮 뜨거울 만큼 난해하다. 밤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이 대충 서 너 달이 됨직한데 “피할 수 없어 즐기는 편이다.

요즘 내게 심리상태가 불안해질 만큼 일상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껏 단 한 번도 꿈과 현실이 들어맞은 적도 없는데 뒤늦게 영험의 신기(神氣)가 내려 미래에 대박(?)날 암시를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닐 테고… 며칠 전엔 북한에서 발사한 로켓을 타고 우주를 날다가 떨어지고, 조선시대 장군이 되어 긴 칼을 휘두르고 고함을 치며 총을 난사하는 군인에게 달려들며 객기부리다가 피를 흘리면서 현실로 돌아오기도 했다.

젠장! 이런 개꿈 말고 기왕지사 주인공이라면 멜로드라마의 귀공자로 아름다운 여인과 달콤새콤한 사랑을 나누고 해피엔딩으로 현실까지 이어지는 멋진 꿈을 꾸게 해달란 말이야~ 어젯밤도 어김없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개꿈을 꾸었다. 오늘밤엔 귀나 코에다 USB를 꼽아둬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킥킥대며 오대산을 향해 새벽길을 나선다.

상원사 범종 비천상의 아름다움과 코믹스런 달마대사
한반도의 명산 중에서도 덕산(德山)으로 으뜸인 오대산(五臺山·1563.4m)은 순하고 부드러운 육산에 월정사(月精寺)와 상원사(上院寺) 외에도 동·서·남·북·중앙 명당 다섯 곳에 암자와 적멸보궁에 진신사리가 봉헌되어있는 불법(佛法)의 산이다.

상원사 경내에 이르니 현존하는 한국의 종(鍾)중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성덕왕 24년(725)조성되어 조선 예종(1169)때 상원사로 옮겨졌다는 범종(梵鐘)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불행이도 지금은 균열이 있다하여 소리로도 들을 수 없고 보호차원에서 투명 아크릴로 장막을 둘러놓아 국보로서의 가치와 멋스러움 보다는 어설픈 관리의 안목에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내공이 부족한 스스로의 안목이라 어설프지만 그래도 여타 종들처럼 문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각된 비천상(飛天像)의 경쾌하게 구름을 타고 천의를 날리는 모습에서 그저 하얀색만 떠오를 만치 깨끗함과 정교함을 느꼈다.

또한 이 시대에 어디 한곳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달마대사 조각상이다.
왕방울만한 눈에 귀보다 귀젖이 더 크고 파마머리 턱수염과 거대하게 기름진 배불뚝이 더욱 우스꽝스러워 외모 상으로는 도대체 불심이라고는 어느 구석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언뜻 우스갯소리인지 설화인지는 모르지만 달마대사가 어느 날 선정 도중에 잠들어버린 것에 스스로 화가 나서 자신의 눈꺼풀을 칼로 잘라내 버렸다고 하는 이 무시무시한 예기를 들은바 있어 눈을 유심히 살펴보니 사실인 듯(?) 느껴진다.

또한 소림권법도 창안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달마대사가 520년경 중국광저우[廣州]에 들어와 숭산(嵩山) 소림사(의 왕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을 함으로서 그 후유증(?)으로 배가 나오고 관절도 쑤시고 해서 자신뿐 아니라 수도하는 승려들에게 운동을 시키기 위해 인도의 요가를 바탕으로 동물의 움직임을 기초로 창안했고 후대에 계속 보완하여 오늘날의 소림권법이 생기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 같은 산세라 하여 오대산
스님의 독경 소리와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상원사를 지나자마자 곧바로 된비알이 시작된다. 눈이 많이 쌓이고 다져져있어 미끄럽기도 하고 내려오는 사람과의 엇갈림도 쉽지가 않다. 아래쪽에 잘 다음어진 완만한 길이 있지만 된비알 길을 이용하면 좀 더 빠르게 중대사자암까지 호젓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약 30분 숲길을 따라 오르니 중대 사자암(中臺獅子庵)이 가파른 사면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산사는 600m 남짓 떨어진 적멸보궁의 수호 도량이자 오대산 이름이 시작된 중심이라고 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상원사를 창건한 다음 산세와 전망이 뛰어나 위치가 좋은 다섯 대(臺)를 골라 중대사자암을 중심으로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의 다섯 암자를 지어 가운데 있는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산의 형상이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 같은 산세라 하여 오대산이란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곳의 중대사자암은 오대의 중심으로 여기서 나오는 샘물은 용의 눈물이라 하는 용안수라고 전해지는 샘물이 있는데 이는 비로봉 아래로 펼쳐진 지형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풍수지리 형국이며 용의 눈에 해당되는 혈(穴)에서 샘솟는 물이기 때문이라 한다. 적멸보궁의 위치는 용의 정수리 부분이어서 의미가 깊다고 함께하는 사학에 관심이 깊은 후배가 귀띔을 해준다.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 적멸보궁
적멸보궁을 향하는 길에 앞서간 이들이 다져놓은 좁고 하얀 눈길 양옆에 언뜻 보아 도깨비 같이 흉물스럽게 만든 돌 시설물들을 촘촘히도 설치한 것이 몹시도 눈에 거슬린다.

이 고즈넉한 아름다운 숲길에 왜  자연훼손이 뭐 별거인가  아마도 밤길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 중대사자암부터 적멸보궁까지 오르는 보살님들을 위해 친절히(?)도 배려했겠지만… 적멸보궁에 봉안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마음을 감싸주고 휘영청 밝은 달이 길을 밝혀주고 전나무 참나무 거목들과 동고비를 비롯한 산새들이 사시사철 밤낮 안 가리고 찾아오는 산객이나 보살들을 반겨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가파른 돌계단을 단 숨에 올라 적멸보궁에 이르자 몇몇 산객중의 불도들은 맨 허공에 대고 절을 한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주전(主殿)에 부처님(佛)의 상징인 불상(佛像)을 모시지 않고 불단만 설치되어 있는 것이란다.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慈藏, 金善宗)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사리(舍利), 정골(頂骨), 치아(齒牙). 가사(袈裟) 등을 가져와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인 설악산 봉정암을 비롯하여, 오대산 중대사, 취서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5곳의 적멸보궁(적멸보궁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의 명당에 봉안함으로서 불자들의 성지인 셈이다. 적멸보궁의 이 높은 곳 까지도 동고비들은 우리를 반기듯 주변을 맴돌며 짹짹댄다.

아~ 잠시 후에야 그 뜻을 깨닫는 무지함이여~ 그래~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려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동고비의 본능인 것을~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외진 곳에 놓아주니 부지런히도 쪼아 먹는 모습에 나도 허기가 느껴진다.

짧은 시간에 변화무쌍의 엄한 모습으로 갈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비로봉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눈이 많이 쌓인 탓에 나뭇가지가 얼굴을 자주 스친다. 탁 트인 정상엔 사방에서 막힘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워 파커를 꺼내 입고 머프로 얼굴을 가린 체 하산 길을 서두른다.

두꺼운 눈을 지고 있는 거목들은 한 그루 한 그루가 파란 하늘과 잘 조화되는 목각예술품이다. 구상나무들은 때 지난 줄도 모르는 듯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파란캔버스에 빤짝이는 은가루를 뿌려댄다.

지금은 비록 울창한 숲길은 아니어도 숲길을 걸을 때는 언제나 그러하듯 어머니의 가슴 속에 모정(母情)이라는 포근함에 안기는 기분이 들게 하고 어느 산이나 정상에 이르면 희망과 용기의 파란하늘을 등에 진 아버지 같은 고목나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반기는 듯하다.

비로봉 정상에서 돌아보니 조금 전 까지도 보였던 파란하늘이 회색구름으로 덥혀 간다.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 걸출한 고봉들의 설경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둘러보는 것도 잠시 지체할 수 없는 추위의 바람에 점심은 뒤로 미루고 먼발치에서 반짝이며 오라 손짓하는 상왕봉 설릉을 향한다.

멀리 있었던 먹구름들이 바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눈을 뿌리며 어느새 다가왔다. 조금 전과의 평화롭고 하얀 세상을 접은 체 매서운 찬바람과 휘날리는 눈보라를 몰아친다.

복장을 고쳐 입는 동안 일행들을 시야에서 사라지고 홀로 하산을 재촉한다. 점점 잿빛구름과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에 높낮이 구분이 어설프다. 자연은 짧은 시간에 변화무쌍의 엄한 모습으로 갈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오늘 수없는 사람들이 발자국에 남긴 일상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덮고 또 새로운 은빛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마음에 남겨진 지난 일상의 검은 흔적들을 덮고 새로운 오대산의 정기를 담은 기운으로 일상을 맞이하리라.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任容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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