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날만 새면 너도나도 목화씨를 파종하려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火田을 일궜다.기존의 밭에는 식량작물과 채소를 심고 개간한 땅에는 목화씨를 파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밭을 개간하는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면서 호랑이 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산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 호랑이들에게 노출되었고, 잡목을 태우려고 불을 피움에 따라 불꽃과 연기에 놀란 호랑이 들이 발작하였다고 보아진다. 이로 인하여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사람이 곳곳에서 늘어났으며 이 사실은 행정계통을 통하여 속속히 태종에게 보고 되었다. 이시기에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였다. 우는 아이도 "저기 호랑이 온다“ 고 하면 그치고, 욕辱중 에서도 가장 심한 욕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놈"이란 말도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 김동진의 <조선의 생태 환경사>를 보면 이조 3대왕 태종 (이방원 李芳遠)은 1402년 지방 수령들에게 명命을 내리기를 "백성들이 호랑이에게 화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였으며 그리고 국가에서 착호갑사 捉虎甲士라는 호랑이 잡는 전문 군사를 양성하여 이 일에 투입하였다고 기록 되어있다.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백성들은 지켜준 왕 태종을 호랑이와 싸운 왕 이라고 칭하여도 좋을듯하다. 우한 폐렴을 잡는 일에 불철주야 수고하는 착염갑사捉炎甲士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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