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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괘불(掛佛)전을 보고

엠디저널 | 기사입력 2014/01/10 [18:47]

[Gallery]괘불(掛佛)전을 보고

엠디저널 | 입력 : 2014/01/10 [18:47]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주 부석사 괘불을 10월 말까지 전시한다고 하기에 주말을 이용하여 서둘러 찾아갔다.

본관 2층에 자리한 부석사 괘불은 너무나도 장대하고 부처님 앞에 서니 내가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못 찍게 하였으나 일본 관광객들이 못들은 척하고 찍는 바람에 나도 뒤쫓아 큰 사위에게 부탁하고 괘불을 뒤로 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 괘불은 내 키가 170cm이니 어림잡아 높이가 9m 너비가 5~6m은 족히 되여 보였다. 괘불이라고 하면 일반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법당 밖에서 큰 법회 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놓는 불화(탱화)를 말하고 비교적 다른 불화보다 크기가 크다. 일반적으로 높이 15m, 너비 10m에 이르고 그보다 더 큰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다.

부석사 괘불

괘불을 이처럼 크게 그리는 이유는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도 있으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신통력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괘불 의식의 시작은 대략 17세기경이라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화로 많은 사람이 죽어 그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함으로 활발히 행하여 졌고 그 의식으로는 영산제(靈山齋)와 사십구제(四十九齋), 수륙제(水陸齋)가 주로 행할 때다.

이런 행사는 죽은 사람을 위한 공통적인 목적이 있다. 제를 올릴 때 부처님의 공덕과 가르침의 설법을 듣고 살아있는 사람도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은 원귀가 되여 전염병을 일으키고 나라에 가뭄을 가지어 오게 하는 등 많은 재앙을 일으키며, 이들의 원혼을 풀어 주고 극락환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공덕을 쌓은 시주 자와 죽은 자를 함께 불화의 맨 아래쪽에 써 놓고 또 어느 사찰의 것이라는 것도 기록하고 참여한 승려들의 이름도 적어 놓고 있다. 법당 안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때 법당 밖에서 제를 한다. 법당 마당에는 임시로 야단(野壇)을 설치한다.

괘불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다. 그 속에서 성대함을 이루고 제를 진행한다. 이를 비유하는 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 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야단 앞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을 정성들여 올려놓고 도량에는 사악한 무리들이 오지 못하도록 부처와 보살, 금강역사의 조그만 한 불화를 걸어 놓고 제를 하기도 한다. 괘불을 내놓고 치르는 이런 의식을 괘불제라 한다.

괘불도 A

영산제는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신 모임을 불교 의식화한 것이라 하고 사십구제는 죽은 지 사십구일 지내는 의식으로 죽은 영혼이 다음 세상에서는 더 나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비는 제이며, 수륙제는 이 사바세계의 모든 불쌍한 중생을 천도하기 위한 제라고 한다. 그 이외 기우제라든지 낙성제라든지 석가탄신일이라든지 큰 행사에도 괘불 의식이 사용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괘불 무늬들

괘불을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티베트가 있으며 티베트에서는 괘불을 탕카라고 한다, 그리고 몽고에서는 의식에 승려들이 나와 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고 한다.

괘불 내용은 영산회상도, 지장회상도, 명부시왕도, 관음보살도, 용왕대신도, 산왕대신도 등이 있다고 한다.

괘불은 맑고 화사한 홍색과 녹색으로 기본으로 하고 너무 호사스럽지 않게 만든다. 무늬는 당초문, 연화문, 국화문, 모란문, 봉황문, 귀갑문 등을 걸맞게 사용하고 웅장한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한다. 괘불은 자수를 놓은 것도 있으나 천에 불상을 그리고 이것을 베에 배접 한다는 것이다.

괘불을 넣는 괘불함

이조시대에 괘불을 그리는 사람은 승려들에 의하여 그려졌다. 세속의 삶을 버리고 괘불을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이기도 하며 엄격한 규율과 법식 속에 철저히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그려야지 개인의 창안이나 상상에 의하여 그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괘불은 오랫동안 밖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천에 그려야 한다고 한다.

또 다 그린 다음에 괘불 끝에 추를 달고 두루마리 형식으로 말아 보관함에 넣어 불당 안에 보관한다. 괘불을 걸기 위해 의식을 치르고 법당 앞에 세운 돌기둥을 괘불 석주라 하는데 거기에 걸어 놓는다.

큰 괘불을 본 것은 TV에서 보니 티베트 라사에서는 경사진 언덕 비탈에 펼쳐 놓은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크기가 담요 크기의 백배는 될 만하고 승려들 몇 십 명이 달라붙어 괘불을 펴는데 법석 떠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괘불도 B

우리 한국에 남아있는 괘불은 대부분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전라도 나주의 죽림사 세존 괘불(竹林寺 世尊卦佛) 보물 1297 호이며 그 이외 구례 화엄사 영산회 괘불 (華嚴寺 靈山會 掛佛) 국보 301호가 유명하고 그 이외도 해남의 미황사 괘불과 청곡사 괘불, 내소사 괘불, 안성의 칠장사 괘불이 라든지 무주의 안국사, 오늘 본 영주의 부석사 괘불 등이 있다고 한다.


부석사 괘불 전시장 앞에서

사찰마다 다 괘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사찰에서 괘불을 조성하는 때에는 사찰의 원력이 총동원 되는 큰 불사(佛事)이다. 시주에서 조성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불사를 위한 많은 비용, 왕실이나 관료, 지방의 유력한 인사들의 광범위한 협조와 참여가 있어야하고 시주를 유도하는 승려들의 역할, 참여한 사람들의 자금을 집결하고 제작 하는 대에도 여러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재작의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그러므로 괘불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모두가 하나 되는 공존의 마당이며 화해의 자리라는 뜻을 조금이 나마 알 것 같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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