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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영광 법성포에 가다!

엠디저널 | 기사입력 2014/01/09 [16:12]

[Gallery] 영광 법성포에 가다!

엠디저널 | 입력 : 2014/01/09 [16:12]

지난달 산울림 문인 모임에서 나들이 일정을 6월 22일과 23일 1박 2일로 정해 놓고 날씨가 어떻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발이다. 며칠째 때 아닌 전국이 가마솥 불볕더위로 한여름인데 가는 날부터 남쪽서부터 장마가 올라오고 제주도는 벌써 폭우로 매스컴에서 엄살이다.

그 다음은 태풍이 7년 만에 정통으로 한반도를 덮는다는 무서운 예보이다. 더위도 문제이나 장마도 걱정, 다음 태풍은 돌아온 뒤의 일이다. 모처럼 나들이가 이 모양이니 출발부터 우비하고 우산을 배낭 속에 넣으면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구경은 고사하고 방 속에서 주저앉아 있다가 맥 빠져 돌아오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도 지난밤에 촉촉이 비가 왔다. 아침 9시에 동료들과 맛날 때도 봄비처럼 빗줄기가 내리는데 우리가 가는 전남 영광 쪽은 폭우면 큰일, 마음속으로 이정도만이라면 좋으련만 하며 봉고차에 올랐다.

영광군 지도

나이 먹어도 여행은 좋다. 남쪽으로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제발 비야 오지 말아다오’하고 비는데 내려갈수록 날씨가 좋은 게 아닌가. 틈틈이 햇살까지 나오고 이정도면 여행하기 딱 알맞은 조건이다. 하늘이 도우는 것 같았다. 오늘날에는 도로망이 발달되어 1박 2일이면 전국 어디에 가서 놀다 와도 좋다. 더구나 주중이고 보니 뻥 뚫린 고속도로가 비행장 활주로 같아 신나게 달린다.


법성포 전경

천안에서 공주를 거쳐 논산, 그리고 고창을 지나 영광 IC을 나와 법성포 포구 삼거리에 점심예약을 해 놓은 ‘007식당’으로 갔다. 영광하면 굴비가 떠오르는 곳 아닌가, 굴비의 본고장 법성포, 이곳은 옛날 서해안에서 가장 큰 항구로 칠산 앞바다로 조기를 잡으러 나가는 관문 이었다고 한다.


상점마다 널어놓은 굴비

조기는 회유성 어류로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양력 4월경 때 쯤 칠산 바다와 위도를 지나 연평도까지 북상한다고 하며 잡은 조기는 영광의 햇빛과 바닷바람 속에 건조한 것을 영광굴비라고하며 이곳이 밤과 낮의 온도차가 커 조기를 말리는데 천혜의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성포가 굴비의 고장으로 유명하여 졌다고 한다. 한때는 해상 물류기지로 번창 했으나 육상운송의 발달과 이곳 와탄 천과 대산 천에서 흘러 들어온 토사가 쌓여 수심이 얕아져 작은 어선조차 입항이 어려워 자연 환경이 몰락의 원인도 되였다는 것이고 한때는 굴비 가계가 400여개가 이곳 법성포에 몰려있었다고 한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정문

지금은 법성포가 한산하기 짝이 없는 고장으로 전락하여 옛 영화는 간곳없는 쓸쓸한 어촌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처음 보는 나에게는 조그마한 어촌이 웬 굴비식당 천지, 어디를 보와도 굴비 백반 집뿐이다. 우선 굴비 백반을 식혔는데 정작 굴비는 쪼그마한 손바닥 길이만한 것 한 마리, 서울 한식집에서 나오는 것만 못한 것에 크게 실망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이것저것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와 근처에 있다는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를 찾았다.


부용루와 사면대불상 전경

법성포(法聖浦)는 원래 불연(佛緣)이 깊은 고장이며 영광(靈光)또한 우주법계와 억만 생령이 깨달음의 빛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나온 명칭인데, 굴비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 안내인의 불만스러운 해설이다. 법성포라는 지명 자체가 불경을 최초로 전파했던 연유에서 생겨난 이름이라며 백제시대 처음에는 아무포(阿無浦)라고 했고 인도 간다라 출신인 마라난타존자께서 중국 실크로드를 거처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해로를 따라 처음으로 이곳으로 도착하여 불교를 전파했던 유서 깊은 곳이며 삼국유사, 삼국사기, 해동고승전에 기록되어 있다 한다.


간다라 유물관

마라난타 존자의 불교에 대한 교화로 백제에 불교가 빠르게 전파되어 갔고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법성포 바다와 접한 경관이 수려한 곳에 근자에 와서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라는 거대한 기념비적인 중요 시설을 해 놓아 관광차원에서도 자랑 할 만하게 꾸며 놓았다. 입구 상징문(象徵門)문도 우리 절의 일주문과는 형식이 다른 이국적인 간다라양식(?)인가 색다른 석조문이 특이했다.


탑원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곳곳에 많은 조형물들이 있고 좌측으로 간다라 유물관의 석조건물이 자리하고 이 또 한 대승불교의 본고장인 간다라양식을 표방한 형식의 건물이다. 유물관으로 들어가니 안내인이 친절하게 2c-5c경의 간다라 석불에 대한 것과 이곳 불교 최초의 도래지에 대한 유래를 자세하게 설명하여 준다. 마지막으로 영상 전시실에 들어가 우리는 간다라에 대한 영상을 보고 나왔다. 그 위쪽으로 탑원(塔園)을 보니 이 역시 간다라 지역사원의 유구(遺構) 가운데 잘 보존된 주원 탑과 간다라 사원의 양식을 모방하여 재현 하여 놓았고 우리 것과는 상의한 이색적인 것에 주목이 간다.


부용루에서 내려다 본 전경

이곳에서 보이는 산 중앙에 커다란 한국식 건축인 부용루(芙蓉樓)가 보이고 그 위쪽으로 사면대불상 (四面大佛像)의 석조물(높이 23m)의 거대한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고 관세음보살을 좌우 보처(補處)로 조각하여 그 밑에 마라난타존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상이다. 이 모든 모양이 인도 석굴사원을 모방한 듯한 형식이 독특하여 우리나라 절들의 하나같은 형식과는 전연 다른 형태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오늘 주중이고 날씨 관계로 주변은 한산하다.


간다라 석불좌상

안내인의 설명에 영광은 볼거리가 많은 고장이며 주변에 원불교(圓佛敎) 영산성지가 있고 기독교인 순교지 와 내산 서원이 있다고 설명하나 다음에 오기로 하고 우리 일행은 마라난타존자가 불교를 전래하면서 최초로 지은 도량인 불갑사(佛甲寺) 을 향하여 차를 돌렸다. 들어가는 입구는 잘 정돈된 주변 조경이 세월이 흐르면 훌륭한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절은 제법 넓은 공간에 터를 잡았고 지금도 확장 중에 있으며 주변 조경에 많은 정성을 들인 흔적을 본다. 전성했던 옛 모습을 되찾을 날이 기대된다.


불갑사 입구

불갑사는 백제가 망하면서 확실한 고증이 없으나 불갑사 고적기(古蹟記)에 의하면 백제 초기에 창건했다는 사찰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고, 구전(口傳)과 마란난타존자의 행적을 통하여 어느 정도 확신 되여 불갑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불갑사

번성했던 이 절도 백제가 멸망할 때 이곳에서도 많은 저항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불갑사도 전화를 면치 못하였으리라는 추측을 했다.


불갑사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

불갑사를 나오면서 오늘 영광은 초행이며 이제껏 영광하면 굴비라는 이미지가 오늘로써 확 바뀌어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불교에 연이 더 깊은 고장이라는 사실과 또한 주변에 많은 볼거리가 있음을 알고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머지도 차근차근 보고 싶음을 뒤로하고 저녁때 고창 선운사를 향하여 고속도로에 올랐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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