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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 선거에 대한 역사적 고찰!

김용환 기자 | 기사입력 2016/03/30 [14:17]

민주주의의 꽃 선거에 대한 역사적 고찰!

김용환 기자 | 입력 : 2016/03/30 [14:17]

고대로부터 각 나라 민주화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누구라도 알고 있듯이 정치 참여의 기회는 기득권의 특권으로 자리 매김하여, 그 참여의 폭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고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자 직접 민주정치를 실현하여 정치의 이상향을 제시했던 아테네 역시도 처음에는 왕정으로 시작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정치 참여의 기회는 전쟁의 참여도와 개인의 경제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아테네를 살펴보면 왕정으로 시작한 아테네는 전쟁의 규모 확대와 함께 기병 중심의 귀족정이 시행 되었다. 여기서 특이할 만한 점은 전쟁의 참여 비용은 개인이 모두 충당하므로 일반 시민은 참여가 불가하였으며, 이에 따른 정치적 권리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후에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개인 재산의 증가와 전쟁 규모의 확대는 기병 중심에서 중장보병(팔랑크스)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에 시민이 전쟁에 참여하는 기회가 열렸던 것이다. 전쟁 참여는 곧바로 정치 형태의 수정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금권정’ 이라는 특이한 정치 체제가 시작되었다.
 
‘솔론’에 의해 시작된 금권정은 재산정도에 따라 정치 참여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었고, 이를 통하여 귀족 계급과 시민 계급의 정치적 갈등을 조절 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솔론’은 조정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지만, 실제 정치적 상황은 귀족과 상공업 시민 계층의 불만을 더욱 가중 시켰으며, 이로 인한 시민계급의 불만을 해소 하고자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한 참주정이 시작 되었다.

‘참주정’은 참된 주인이라는 뜻으로 귀족 계급의 토지를 몰수하여 일반 농민에게 재 분배하는 등 평민층의 열렬한 지원하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듯 참주정은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독재로 치달았으며, 결국 그의 아들 히피아스의 추방과 함께 참주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함께 새로이 부족을 개편하고 민주화의 초석을 이룬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 실시되고, 앞서 시행되었던 ‘참주정’의 폐행을 막기 위하 그 유명한 ‘도편추방제’를 실시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계기로 민주정치의 황금기가 도래 된 것이다. 페르시아의 막대한 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전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연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상공업층 뿐만 아닌 일반 노동자까지 하다못해 노젓는 수병으로 그 전쟁의 참여 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시작 되었으며, 페리클레스에 의한 여러 민주적 개혁이 시작 되었다. 공직자에 수당 지급을 통해 노동자 계층도 정치 참여의 길을 열었으며, 추점제, 윤번제 등의 실시로 공직자 선출의 공정성을 확대 시켰고,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시민의 직접 민주 정치를 통하여 민주정치의 이상향을 꽃 피웠다.

물론 외국인, 노예, 여성 및 아동은 제외하였지만 말이다. 이런 민주정치의 실현 과정은 로마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왕정으로 시작한 로마도 곧이어 귀족정의 특징을 지닌 원로원을 출현 시켰으며, 전쟁의 확대와 더불어 성산투쟁을 비롯한 평민회와 호민관의 선출 역시 그리스의 발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전쟁의 규모의 확대는 12표법, 리키니우스법, 호르텐시우스법 등 점차 시민의 권리를 증대 시켜 나갔으며, 이런 시민의 권리는 결국 법적으로 귀족과 평민의 동등한 위치를 출현 시켰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는 이런 국가 방위에 관한 의무가 곧 정치 참여의 권리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민의 정치 참여의 권리는 중세 이후로 다시 특권 계급으로 넘어가 참여의 폭을 제한 하였으며, 종국에는 시민 혁명(명예혁명, 프랑스 혁명 등)으로 특권계층의 소멸과 더불어 정치의 참여 폭을 넓혀 나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혁명으로 인한 선거권의 확대는 모든 시민이 아닌 유산계급에게 한정된 제한적 선거권 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거권 확대의 요구는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나, 프랑스의 2월 혁명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무산자 또는 노동자 계층의 선거권을 요구했던 이 운동에도 역시 여성의 선거권은 제외 되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선거궈 계정과 시민들의 요구에 선거권의 폭은 넓혀져 갔으며, 여성의 선거가 최초로 가능하게 된 것은 미국 오하이오 주(1869)에서부터 국가로 최초는 영국(1918)이며,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친 프랑스는 가장 늦게 1944년에 선거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런 선거권의 확대는 정치 참여의 가장 기본적 권리이자, 의무이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강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대로부터 시작된 이런 정치참여의 기회는 수많은 혁명과 유혈 사태를 거친 역사적 소산으로, 거듭 강조하여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곧 4.13 총선이 다가온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며 우리의 주권을 실현 시킬 중요한 선거적 의무는 꼭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거는 권한이자, 의무임을 다시금 자각하여, 부디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으로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 홍성호 교사 프로필 -
(현) 양일중학교 역사교사
(전) 안산 제1대학 공무원 아카데미 국사 강사
(전) 대치/청담 독서문화연구원 교육 팀장 
(전) 대치동 멘토 학원 원장 (역사/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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