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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스키타이 황금문명 展에 가다!

엠디저널 | 기사입력 2013/12/23 [11:05]

[Gallery] 스키타이 황금문명 展에 가다!

엠디저널 | 입력 : 2013/12/23 [11:05]

올해도 저문다. 12월은 다난했던 해를 결산하고 오는 해를 설계하고 다들 송년회로 바삐들 돌아친다. 눈 깜작하는 사이에 또 한해가 간다. 젊을 때 흥청망청 지내버린 나날들, 다들 나이를 먹어도 그런 것은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 나는 천년이나 살 것 같은 오만했음이여! 참으로 귀중한 시간들이 오늘에 와서야 절절히 느낀다. 먼저 간 그가 그렇게 간절히 살고픈 시간들을 나는 살면서 지금은 하루를 일생처럼 살려 노력하고 있다.

전시장 앞에서

이제는 오라는 데는 별로 없고 갈 때도 별로 없다. 하기야 관혼상제 서로 품앗이 하던 시절에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볼 때도 많았고 오라는데도 많았지만 그 시절 다 지나고 보니 홀가분한데 한편 속마음은 허허하고 썰렁하다. 혼자 지네는 데에 이골이 나 얼마 남지 않은 나날, 금쪽같은 아끼는 시간을 쪼개어 오늘도 혼자 ‘스키타이 환금문명 전’을 기웃 꺼린다. 이런 순간이 나에게는 취미생활의 하나이며 가장 즐거운 시간 이다.

스키타이가 지배했던 흑해 북극지역


유라시아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이르는 황금문명의 흐름을 2011년 12월 1일부터 2012년 2월 26일 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스키타이 황금 문명 전’이라는 제호 아래 한다기에 주말을 이용하여 갔다. 경노는 5000원, 여직원이 신분증을 보잔다. 듣던 중 반갑고 내 모골이 아직도 그 정도로(?) 보인다니 업어주고 싶다. 시작한지 첫 주말이라 그런지 아직 선전이 덜 되었는지 의외로 비교적 한산했다. 우크라이나 국립중앙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스키타이 황금문화의 정수를 보여 준다는 선전에 관심이 깊다.

스키타이인 화살통

나무부분은 부식되어 없어지고 황금 커버만 남아있으며 주술적인 장면과 동물들의 싸우는 모습이 새겨있다.

많은 종류의 다양성과 문양의 풍부함을 선보인다는 것으로 무려 260여점의 북방 유라시아 유목민족의 최고 수준의 유물 컬렉션이라 한다. 스키타이의 유물들은 전통적인 고유한 특징 뿐 아니라 서아시아와 중근동의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 같은 다른 앞선 문명으로부터의 많은 영향을 받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키타이 문화는 BC 7세기에서 BC 3세기에 걸쳐 흑해 북쪽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성립된 기마유목민족으로 유라시아 내륙의 광대한 초원지대에서 활동했던 세계 최초의 기마민족문화를 형성하였다.

스키타이인의 전투장면

특히 북쪽 연안 지역은 광활한 초원을 통해 서쪽의 그리스, 헬레니즘으로부터 초원의 훈족, 알타이족, 퉁구스족, 돌궐족, 몽고에 이르기까지, 유목민족으로 끊임없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그들의 동서양교류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요지라는 것이다. 원래 스키타이라는 이름 아래 고대 중동과 유라시아 평원을 주름잡은 여러 유목민족 집단이다. 그들은 동서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교역과 때로는 침략과 약탈로 매우 호전적이며 싸움을 즐겼으며 한해도 적을 한사람도 죽이지 못하면 경멸을 받기까지 하였다고 하며 적에 수급을 배여 해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였다는 풍속도 있으며 본인도 서역 여행 중 몽성(夢城))이란 곳에서 해골로 만든 술잔과 인피로 만든 북을 보았다.

가슴장식

귀족의 의례용 장식으로 스키타이 미술의 걸작. 황금 무게만도 1149.5g이다

원래 북방 유목 기마민족은 기동성이 민첩하여 전투에도 능해 질풍같이 쳐들어와 질풍같이 사라진다는 신출무기한 용사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농경문화를 가진 서남의 터키, 이란 등 과 중국 등을 괴롭혔다. 서방제국들은 그들을 바라바라족이라고 폄하 했는데 어원은 바바리인(야만족)에서 유래 하였다고 하며 중국도 북방 유목민족을 통칭하여 흉노(匈奴)라는 어원도 북쪽 오랑캐라는 폄하한 어원에서 나온 것 이란다. 진시황제도 얼마나 지겨웠으면 만리장성을 쌓았을까 또한 한(漢)나라도 북방 기마유목민족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축조 보강하였다.

멧돼지의 형상

스키타이인들은 동물 이미지가 마법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으며 그 주술적인 능력을 믿고 있었다.

오랜 기간 북쪽의 목축을 주로 하는 기마민족과 ,남쪽의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민족과의 약탈과 방어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스키타이 황금 승배 문화는 신라문화와도 계통적 연관성으로 인하여 한국문화의 주류를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만주의 요동반도의 같은 북방족의 옛 홍산 문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스키타이적의 황금문화를 동쪽 끝에 있는 신라에서 금관. 허리띠, 기타 섬세한 금작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각배

넓은 부분에는 사슴뿔을 가진 머리와 멧돼지를 표현한 장식판이 붙어있다.

북방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샤가, 훈, 알타이, 퉁구스, 돌궐, 여진, 말갈, 만주족, 흉노, 몽고 등 수많은 북방 족이 있으며 이들 종족 중에 중국 중원을 정복해 금나라. 요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을 세웠다. 우리 한국 민족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 속에 우리가 만주벌판에서 한반도로 밀려나게 된 사유를 우리는 안다. 헌데 서쪽의 스키타이 문화는 더불어 서와 동의 유라시아 대륙문화와 한국역사의 동질성을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멧돼지머리가 장식된 검과 칼집

홍산 문화에서는 찬란한 옥제품들의 문화를 볼 수 있었지만 스키타이 왕족과 귀족의 고분 등에서는 높은 수준급의 금 세공품을 볼 수 있으며 금속에는 사르마리안 시대에 널리 퍼진 스타일로 보석공예와 유리공예를 보며 그것들은 단순 하지만 매우 정교하고 독특한 장식 모티브를 보여 준다. 매장된 유물들의 독특한 특징은 동물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스키타이 적 요소를 신라 고분에서도 발견되는 요인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유목문화의 흉노의 영향이라고 하나 연속성이 없고 신라금관은 범 시베리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서역의 유리제품이나 보석이 박힌 누금 세공 등의 서역적인 요소가 신라 고분에서 발굴 된다.

훈족의 검

왜 중간 나라들에는 없고 스키타이지역에 있을까  스키타이인들은 이미지가 주술적인 것에 근거를 보여준다. 그리스와 동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스키타이 금 세공인들은 새로운 이미지와 신화적인 소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때 동물의 이미지를 추상적인 장식 속에 세부양식의 기능을 가미하고 있으며 신라 왕관의 사슴 뿌리를 상징하는 출(出) 자표가 바로 동물의 이미지이다. 또한 스키타이의 뿔잔은 신라나 가야 토기에서도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에 부산 복천동 출토의 마두각배(馬頭角杯) 와 영천 어은동 출토 마형대구(馬形帶鉤) 등 스키타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유물 10여점도 우리의 선사문화와 스키타이 문회와의 연관성을 비교 검토 하기위하여 출품했다고 한다.

신라 금관

전 세계에서 발굴된 황금 왕관이 십 여 개인데 그중에 신라 왕관이 6개라 한다. 세계 고고학자들은 알타이 황금, 스키타이의 황금 그리고 신라의 황금, 다들 황금나라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뿐이랴 가야 고분에서 백제고분, 고구려에서도 금관이 출토된다. 신라에서 활짝 핀 황금 문화를 인접국인 일본학자들이 부러워하고 있으며, 이 또한 스키타이 황금 문화에서 전래 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황금 가슴 장식

문명과 문화는 흐르게 마련, 특히 기마민족의 흐름은 보다 빠른 기동성으로 동과 서를 이어주고 우리의 선조들도 몽골리언의 피가 흐르고 이 또한 먼 옛날 부족의 이동에 따라 서역에서 문화와 같이 동으로 흘러왔음을 이런 매장문화 유품 전시를 통해서 동과 서는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전시장을 나왔다.

그리핀 형상의 장식판 : 새의 머리와 날개달린 사자형상으로 신의 사신으로 믿어져오고 있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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