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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 사랑의 배신, 복수로 선택한 살인

김은식 기자 | 기사입력 2014/06/23 [09:37]

[Painting & Crime] 사랑의 배신, 복수로 선택한 살인

김은식 기자 | 입력 : 2014/06/23 [09:37]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성취하려고 평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며 또 사랑에 배신당해 한을 품으면 그 한은 이성을 잃게한다. 때론 이러한 감정이 파괴적으로 작용해 심지어 사이가 좋았을 때 태어난 자식마저 살해하는 끔찍한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을 다른 여인에게 빼앗긴 여인이 남편과 그 연적에게 가장 끔찍한 복수를 자행해 질투와 복수의 화신이 된 여인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이아(Madea)라는 여인이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데스(Aietes)의 딸로서 총명하며 강한 의지를 지녀 열정적인데다가 마법을 부리는 신기한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남자를 모르던 순진한 그녀가 아버지의 소유인 황금양털을 훔치러 들어온 이아손(Iason)에게 첫눈에 홀딱 반해 버렸다. 사랑의 화살이 박힌 순간부터 메데이아는 세상에서 오직 이아손만을 위해 살겠다는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이용해 꿈에도 그리던 황금양털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따라와 위험한 지경에 이르자 메데이아는 자기 동생 압쉬르토스의 사지를 토막을 내 처참하게 죽였다. 충격으로 넋이 나간 군사들이 토막난 시체를 수습하는 사이에 국경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다. 즉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형제를 살해하고 조국을 배반하고 정든 땅을 저버리고 도망쳤다.
 

메데이아 동생을 살해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탈출
이러한 스토리를 사실로 보는 듯이 그린 것이 구스타브 마로(Gustave Moreau 1826~98)가 그린‘이아손과 메데이아’(1865)이다. 이아손은 손아귀에 넣은 황금양털을 자랑스러운 듯 들고 있으며 칼에 맞아 죽은 큰 새위에 메데이아와 함께 올라 서있는 것은 동생을 살해하고 탈출에 성공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신적인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아손은 그녀와 함께 코린트로 가 두 아들을 낳고 1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 평화스러운 가정에 난데없는 비극이 찾아 들었다. 데바이의 왕 크레온으로부터 사위가 돼 달라는 제안을 받은 이아손이 순식간에 마음이 돌변해 메데이아를 헌신짝처럼 버릴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아손은 젊고 아름다운 왕녀 글라우케와 재혼하려고 메데이아에게 이혼을 강요한다. 이아손의 입장에서는 글라우케와의 결혼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젊은 미인을 얻는 동시에 출세와 권력과 영화까지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처럼 믿었던 남편의 배신에 분노와 질투로 눈이 뒤집힌 메데이아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메데이아는 남편의 이혼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고는 마법을 부려 신부의 예복을 만들어 글라우케에게 선물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복을 입는 순간 온 몸에 독이 스며들면서 글라우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처참하게 죽었다.

19세기 영구의 화가 샌디스(Anthony Frederick Sandys 1829~1904)가 그린‘메데이아’(1866~68)를 보면 메데이아가 글라우케를 살해하려고 독을 부어 물을 지핀 다음 예복에 사용할 실에다 독을 무쳤다. 탁자 위에는 그녀가 흉악한 마법사임을 알려 주는 상징물들이 보인다. 이 마법의 소재들 중 교미를 하고 있는 두꺼비 한 쌍이 유독 눈에 띄는데, 이처럼 낯 뜨거운 교미 장면을 등장시킨 것은 섹스와 질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화가는 메데이아의 주변을 이국적인 액세서리로 장식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원한이 사무쳤는지 메데이아는 분을 참지 못해 애꿎은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 뜯고 있으며, 살기 어린 눈동자에는 증오가 이글거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저주의 한숨이 새어난다. 샌디스는 그림을 통해 복수심이 한순간에 여인을 얼마나 무서운 악녀로 변모시키는가를 보여 준다.
 

남편이 사랑하는 자식을 죽여 고통을 겪게 하다
이렇게 상대의 여인을 죽인 것만으로 복수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메데이아가 이번에는 증오의 칼날을 남편에다 들어대 가장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그를 단순하게 죽이기는 것만으로는 그 동안 자신이 받은 수모와 고통을 보상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 남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해쳐 그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하였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남자가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자신의 대를 잇는 혈육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메데이아는 아이들을 죽일 결심을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한 집안의 혈통을 잇는 후손이 없는 상태로 죽는다는 것은 가문의 크나큰 수치요. 남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죽이기보다 남편이 아끼는 모든 대상을 제거해 그를 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아가게 했다.

메데이아가 이러한 결심으로 자기 아이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많이 있다. 그 가운데서 이 줄거리에 부합되고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아 (Eugene Delacroix 1798~1863)는 ‘격노한 메데이아’(1862)라는 그림에서 이아손에 대한 복수로써 그 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살해한다는, 어머니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표현했다.

그림은 지금 자기를 추적해 오는 이아손을 피해 동굴에 숨어서 다가오는 이아손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을 죽일 어머니의 손에 매달려 있고, 손에는 보기만 해도 섬직한 커다란 비수가 들여 있다. 어린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의 품이기에 안심하고 있으나 어쩐지 일상과는 달리 거칠게 다루는데 발버둥을 쳐 본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메데이아의 머리 모습에서 이성을 잃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람한 그녀의 체격은 그녀의 능력을 여실히 보이고 있다. 살기에 차있는 그녀의 눈은 그림자로 가려 한결 그림의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있다.

여성에게 사랑의 배신이란 인내의 한계를 넘는 다른 어떤 고통보다도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게 이성을 잃게 되고 한 가정을 풍비박살내는 파괴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도 드물지 않게 듣는다. 인간의 마음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이며 인간의 정(情) 중에서 가장 깊은 정은 어머니의 정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은 천국이고 어머니의 정은 극락이라 한다.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배신당하면 그렇게도 착하고 따뜻하고 너그럽던 모심이 질투로 돌변하고 질투는 그리도 사랑하던 자식마저 파괴하는 무서운 여인으로 변하는 마치 쌍두(雙頭)의 뱀과 같은 형태의 여심과 모심을 지닌 것이 여자라는 것을 절실히 전해준다.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어머니가 남편에 대한 적의(敵意)를 표현하기 위해 자식을 살해하는 심층심리를 앞에 기술한 희랍신화에서 따서‘메데이아 콤플레스(Madea complex)’라 한다.

원래 어머니에게는 어린이를 사랑하며 양육하는 심리와 어린이를 살해할 수도 있는 심층심리가 잠재적으로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 폭발하는 여인의 감정의 분출과 파괴 본능, 폭력성은 남성을 한없이 두렵게 한다. 그래서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여인은 무서운 존재임을 남성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미이기보다 한 남자의 여인으로 남고 싶은 여인의 한이 화면 전체에서 강렬하게 뿜어나온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문국진 박사,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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