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
해드림출판사, 84세 김응수씨 인생대하소설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 펴내
김재천 기자 | 입력 : 2014/04/11 [12:14]
-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84세 미국 교수,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쓴 소설 발표
17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Glenford University, Louisiana에서 일본어 교수를 역임한 84세 김응수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쓴 소설을 발표했다. 해드림출판사에서 출간한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이다.
1930년에 출생한 저자는 일제강점기, 1945년 광복, 그 뒤 이어진 한국전쟁과 산업화, 유신독재, 그리고 정치민주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정치적으로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기에, 저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들은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역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김응수 교수는 삶이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 선 작은 개인이기도 했지만, 또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이제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한 주체적인 인물이다. 84년의 인생, 그것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달려온 그는 한편의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기로 했다.
어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 소설 같은 인생이 소설이 되다
사람이 아무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실존 인물이 실제 겪은 사건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잘 없다. 그 사건이란 것이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인 경우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과 역사에게 중대한 일일 때도 있다. 김응수 교수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다.
그는 책은 펴내면서 “이 책은 저자의 신변잡기(身邊雜記)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았던 일본의 침략.강점 시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처참했던 전란의 시대, 미숙하기만 했던 민주주의 시대의 좌절, 군부의 독재시대, 산업화시대, 민주주의의 복원시대 등 역사적인 배경과 환경에서 살았던 한 이름 없는 남자의 고뇌와 진솔한 자기고백이다”고 밝혔다.
‘삶의 꾼’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진솔한 자기고백이며 벌거벗은 자화상
이 책은 기성작가의 작품이 아니다. 이웃 같은 한 할아버지(84세)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인 결정이다. 또 우리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삶의 꾼’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진솔한 자기고백이며 벌거벗은 자화상이다.
비정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소용돌이 쳤던 성패와 좌절, 사랑과 낭만,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꾼’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이 작품을 통해 기성세대는 저자가 앓았던 시대적 아픔과 긍지를 함께 되새길 수 있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몰랐던,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소중한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
그 흐름을 막을 수도 없고,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는 강물의 흐름은 우리 인간의 인생과도 같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 그럼에도 저자는 제목에서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라고 묻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 종국적으로 죽음에 다다른단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동안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던 인생에 대한 소회일 것이다.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그 여정 중에 무수한 풍랑을 만나고 수 없이 많은 돌과 바위에 부딪친다. 우리의 인생도 말끔하게 다듬어진 설계도나 로드맵이 아니다. 변화무쌍하며, 겉잡을 수 없고, 흘러흘러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인생의 우연성, 의외성, 예측불가능성은 강물 같다.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
가벼운 발걸음처럼 술술 익히는 문장
결코 웃을 수 없는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저자는 시간이 흘러 자기 삶을 관조로 서술할 수 있게 됐다. 소설의 소재가 된 그의 인생은 어떤 삶과 견주어도 가볍지 않지만, 그의 문장은 가벼운 발걸음처럼 술술 읽혀진다.
“신문의 제 일면에는 ‘일어나자 마자 격멸擊滅의 개가凱歌 태평양을 흔들다.’라는 제목 아래 진주만 기습의 전과를 보도하였으며, 전 일본 열도는 자만과 자기도취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일본의 육군 병력을 실은 수송선은 남으로 남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 맨 먼저 점령당했다. 영국이 내로라 하고 자부했던 거함巨艦 ‘프린스 오브 웨일즈’ 가 남지나해에서 격침 당했다. 영국령 싱가포르가 함락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항복담판을 위해 일본군 사령관 야마시다<山下>중장이 영국군 사령관 파시발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야마시다가 책상을 치면서 ‘이에스냐 노냐?’ 하고 소리 지르면서 파시발 장군을 윽박지른 장면이 사진과 함께 상세히 보도되었다. 이런 것은 모두가 거창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신문사의 윤전기는 쉴 새 없이 불이 나게 돌아갔고, 영국의 식민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장악한 일본군의 사기는 충천하고 전 일본은 흥분과 광란의 도가니와 같았다..
아아, 그 얼굴로 그 목소리로, 무공을 세우라고 처와 자식이 찢어져라 흔들든 깃발의 물결, 먼 먼 구름 넘어 눈을 적시네
아아, 당당한 수송선이여, 조국이여 안녕, 영광 있으라 저 멀리 바라보는 님의 궁성宮城의 하늘에 맹서한 나의 결의음악가는 다투어 노래를 짓고 작사자는 서둘러 노랫말을 지었다. 온갖 군가가 넘쳐났다. 모두가 국민의 사기를 돋우고 군인의 무운을 빌고, 군의 전과를 추켜세우는 그런 것들이었다.
“남방의 보루네오,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은 그 광대한 고무농장을 다 차지했다. 일본군의 전과를 과시하기 위한 듯 전국 모든 소학교 학생들에게 흰 색의 고무공이 하나씩 선물로 배급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학교선생님들이나 정구를 치던 그 공이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운동화가 배급되었다. 아이들은 또 한 번 환호작약했다. 그러던 상황이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니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 ‘강물은 흘러 어디로 가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