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ting & Crime] 몸의 공간적 영역성과 몸짓언어
엠디저널 | 입력 : 2014/02/03 [08:51]
어떤 동물이라도 그 몸 주변에 자기 나름대로의 공간영역이 있다. 그런데 그 공간영역은 태어난 환경이나 생활환경의 복잡성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심심산골에 살던 호랑이의 공간적 영역은 산 전체의 광범위하지만 동물원의 호랑이는 좁은 우리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영역성은 사람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투명한 캡슐 속에 들어가 행동하는 것이라면 그 개념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그 투명 캡슐도 인구밀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문화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은 자기의 공간영역이 침범되면 사나워지며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원 버스에서 개인공간이 좁아져 시달리게 되면 사람들은 화를 잘 내고 걸핏하면 싸우려 들지만 좌석버스와 같이 자기의 공간영역이 보장되면 사람들은 느긋해 진다.
사람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있어서 몸짓언어를 연구하여온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박사는 개인의 공간적 영역에 있어서의 사람간의 거리를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이를 거장들의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밀접거리 (intimate distance)
가장 가까운 사이의 대인관계의 거리로서 0~45cm를 말하며 부부나, 연인, 아주 다정한 부모 자식 간과 같이 호흡하는 입김이 닿아도 무방할 사람들 사이에서 취하는 거리이며 이렇게 근접된 개인공간의 영역을 말한다.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온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라는 작품은 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인데 피그말리온은 여자의 결점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여성을 혐오하게 되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왔다. 그는 훌륭한 솜씨를 부려 상아로 여인의 입상(立像)을 조각하였다.
그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살아있는 처녀의 모습과 흡사해 자신의 작품에 감탄한 나머지 그 여인상과 사랑에 빠졌다. 피그말리온은 신에 기도하였다. “신이시여! 원컨대 나에게 ‘상아 처녀’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는 ‘상아 처녀’에게 일상과 같이 조각의 입술에 키스하였다. 그러자 입술에서 온기가 느껴졌으며 팔과 다리에 손을 대어 보니 부드럽게 느껴졌으며 조각상은 정말로 살아 있었다. 그래서 피그말리온과 처녀조각상은 서로 얼싸 안고 밀접거리 내에서 기뻐한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밀접거리 내에 있다 해서 모두가 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가 성적인 목적을 지녔거나 아니면 적의를 품고 해칠 목적으로의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프랑스의 화가 프라고나 (Jean-Honore Fragonard 1732-1806)의 ‘빗장(1778)’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은 여인의 방에 침입한 강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밀고 당기는 절박한 순간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 즉 도망치려는 여인을 꼼작 못하게 저지하는 가해자는 억센 힘으로 여인의 허리를 휘감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팔은 힘껏 뻗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화가는 홈이 파진 걸쇠에 빗장을 넣어 잠그는 것으로 남녀의 성기가 겹쳐서 빗장처럼 결합되는 것을 표현했고, 그것이 피해여성의 의사에 반한 강세적인 행위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즉 두 사람은 밀접거리에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몸짓언어로는 가해자가 허리 위는 밀접거리로 끌어 당겼지만 그 밑은 밀접거리가 아닌 피해자는 더 멀리 떨어지려 애를 쓰고 있다. 이러한 개인의 공간영역의 상체와 하체의 차로 두 사람의 관계를 잘 표현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그야말로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한 밀접거리를 표현한 그림이 있다.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의 ‘잠(1866)’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 당시의 사회 풍조로 보아 화가가 여성의 나체를 그릴 때는 신화나 전설을 핑계 삼아서 그렸는데 쿠르베는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을 그러한 구실 삼을 배경 없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는 것은 그의 노골적인 사실주의를 고집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여인은 침대에 몸을 맡기고 전연 무방비한 상태로 알몸을 노출시키고 있으며 침대 위에 널린 진주와 머리 핀, 탁자 위의 고급스러운 물병과 물잔, 어둠을 배경으로 빛나는 화병과 꽃 등으로 보아 이 레즈비언들은 부유층에 속하는 여성들임을 표현한 것으로 19세기말 파리 부유층 여성들의 실상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두 여인은 서로 밀접거리 내에서 깊은 잠에 들어 있으며 상체만이 아니라 하체가 더 밀착된 것으로 두 사람은 동의에 의한 행위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밀접거리 내에 속하는 개인적 공간영역이지만 이해가 없다면 '침범'의 경우로 여겨지겠고, 다툼, 싸움, 법적 공방에 이르기까지의 갈등상황을 유발하는 거리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 거리 (personal distance)
상당히 가깝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마주침에 해당하는 거리로서 46~120cm로 형제자매나 다정한 친구 사이로서 서로 손을 내면 악수 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하는데 이러한 것을 잘 표현한 그림으로는 쿠르베의 ‘안녕 하십니까 쿠르베 씨(1854)’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우측에 배낭을 메고 한손에는 모자를 쥐고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든 수염을 기른 쿠르베가 자기의 후원자와 그 하인을 시골길에서 만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쿠르베와 후원자 두 사람은 개인적 거리 내에 있지만 반갑다는 표정은 전혀 없이 어색한 데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지팡이를 들고 있는데 쿠르베의 것이 더 긁고 길고, 두 사람 모두는 턱수염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쿠르베의 것이 더 많고 길다 그러면서 쿠르베는 턱을 처 들어 눈길은 후원자를 밑으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구나가 이 그림을 보면 ‘왜 두 사람은 이렇게 어색한 만남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화가의 의도는 ‘내 비록 후원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는 하지만 당신이 과연 내 그림의 예술성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는 조금도 굴하지 않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인듯한 그림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 (social distance)
인터뷰와 같이 공식적인 상호작용 상황에서 유지되는 거리 즉 121~360cm까지의 거리로써 업무상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거리로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가 되겠다.
공적 거리 (public distance)
개인적인 관계와는 무관한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360cm를 넘는 거리로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간에 유지되는 거리가 한 예이다.
사회적 거리와 공적 거리에서는 그 개인의 공간적 영역의 높이로 우열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에 우승, 준우승, 3위의 공간영역은 그 높이로서 표현되며, 재판의 경우는 재판관의 자리를 일반인들 보다 높이 함으로서 그 위신을 높여주고 있다. 이제 이러한 공간영역을 잘 표현한 작품을 보기로 한다.
프랑스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솔로몬의 재판(1649)’은 솔로몬 왕이 지혜로운 재판을 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다. 어린애를 두 여인이 서로 자기의 애라고 주장하니, 그렇다면 어린애를 반으로 갈라서 하나씩 가지라고 했더니 한 여인은 그리 하겠다고 하는데 다른 여인은 그렇게는 못한다고 해서 그 어린애의 어머니가 누구라는 것이 자명하게 밝혀졌다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의 그림인데 재판관은 높은데서 내려다보며 재판하고 있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문국진 박사, 고려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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