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면 한 시대의 역사도 주춧 돌과 같은 사람이 받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주춧 돌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다한 사람이 여럿 있는데 맨 먼저 황희 정승을 보려고 한다. 지금으로 부터 657년 전인 1,363 년 고려 개성에서 태어나 20세에 고시에 합격 등용 되었으나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와중渦中에 두문동 杜門洞에서 은거 隱居중 이성계의 간청으로 1,394년 공무를 재개하여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을 거치며 지금의 감사관, 장관, 총리 등 여러 위치에서 55년간 일하였다. 건국 초 어수선하고 질서가 안 잡힌 조정의 일을 하나씩 바로 잡아 조선500년의 밑 바탕을 단단히 닦아 놓았다. 뽕나무 재배법을 가르치고 누에치기를 장려 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백성들의 삶에도 관심이 컷다고 보아진다. 특히 영의정으로 18년간 세종대왕을 잘 보필하여 태평성세를 이루어 왕으로 하여금 잡념없이 한글을 만들 수 있게 국정을 유지 하였다는 것은 강물을 먹물 삼아서 기록하여도 부족한 그의 공적이라고 보아진다. 황희가 없이 세종 임금께서 한글 연구에 초지일관 할 수 있었겠는가 한글 없는 대한민국을 가정할 때 오늘도 그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아 경의를 표한다. 그는 87세가 된 1449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훈민정음 반포는 그의 재임 중인 1,446년에 있었으니 당시 49세의 왕과 83세의 영의정, 반포 후 왕은 1,450년 영의정은 1,452년 각각 4년과 6년이 지나 거의 비슷하게 세상을 떠나다. 하마터면 한글 반포의 선물이 우리에게 허락 되지 못 하였겠다는 역사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본다. <있을때 잘해> 유행가의 가사만은 아닌 것 같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군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사람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