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판대기만 보면 정말이지 몰골스럽기 짝이 없는 밋밋한 막대기. 하지만 우직한 놈 치고 거짓말 하는 않는 법이다. 욕기가 수직으로 타올라 화들짝 일어서는 날이면 여지없이 이지러진 빈 공간 찾기에 급급 하는 나. 성급하게 대드는 품이란 영락없이 투혼만으로 육박전을 일삼는 무모한 유격대원일 뿐, 어미의 품에 안기는 평화롭고 단정한 품새는 결코 아니다. 단병(短兵)하나 없이 나 죽고 너마저 죽여주겠다고 다짐하며 덤벼들지만 매번 무모한 치기(稚氣),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이글거리는 활화산의 불꽃에 몸을 던져 스스로 산화하는 자진(自盡)의길. 이를 반복하는 일상의 짓거리. 그것이 바로 나의 태생적 한계이다.
한거(閑居)와 함묵(含)의 비원(秘苑).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명의 화원(花園)이다. 가파른 암벽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한 송이 석화(石花). 그 꽃봉오리가 산허리 갈대숲에 다소곳이 숨어있다. 속적삼 소매 같은 가녀린 잎새가 꽃봉오리를 가리고 동굴 나들목까지 낮은 울타리를 치고 있는 형세. 무한적막의 공간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힘이 잠재되어 있는 역동적 공간이다. 황량한 황무지 시절을 지나 개간 신호가 떨어지면 그야말로 다용도(多用途) 공간으로 변모한다. 나에게 매양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양생의 터전이요, 생명의 불꽃을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 현장이다. 문짝도 문턱도 없는 단지 12cm 길이의 찌그러진 어둠의 터널. 하지만 거친 숨소리가 바람을 가르기도 하고 울먹이는 신음소리가 도랑물에 섞여 질퍽거리는 환희의 공간. 살 냄새 물씬한 신비한 밀실(密室)이다. 뇌성을 동반한 벽력이 태양을 내리치기도 하고 부서진 달빛, 찬란한 별빛을 은연 중 불러 모으는 작은 우주. 너와 내가 함께 그곳에서 뒹굴며 동거동락해도 존재마저 자각할 수 없는 별세계(別世界). 동굴 벽에 서식하는 유산균 등 8종 야생화가 짙은 사향(麝香)을 발산 하며 pH 3.5~4.5의 산성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항시 자정(自淨)을 시도하는 첨단 위락 시설. 애간장 녹이는 욕정의 물결이 일면 나는 하릴없이 나들이에 나선다. 타는 목마름과 몸살 같은 열기를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땀으로 번질거리는 돌덩이가 유정한 화덕에 진입한 채 사랑을 달여 내는 우스꽝스럽고 방정맞은 원시인의 톱질. 쾌락의 담금질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닥친 퇴출의 순간. 팽만한 쾌감이 정수리를 박차고 솟구치면 엄청난 햇덩이가 내 몸을 소진 시켜 단 한 개의 점에 가두고 만다. 시공을 초월하는 공동(空洞)의 화염이 전신을 태우는 극치의 오르가즘. 가눌 길 없는 극도의 쾌감이 폭발한다. 그 거대한 폭발력으로 세상 밖으로 떼밀려 나가는 내 운명. 황홀한 침몰로 시나브로 줄어드는 몸집에 한줄기 바람이 스쳐간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종언(終焉)이 아니다. 더 큰 기쁨을 충전, 예약하는 식힘 질일 뿐이다. 흥건하게 젖은 동굴 언저리에 피어 오른 아지랑이 같은 열기 그리고 산산이 쪼개진 빛살 파편이 낙엽처럼 뒹군다. 아픔 같은 갈증을 해소하고 나면 난 이윽고 평야에 드러눕는다. 속 풀숲마저 젖어 든 내실을 보듬고 쪽 잠에 빠져든다. 이것이 바로 요철 맞짱의 정형, 흥분기, 고원기, 극치감기, 소실기이다. 서로 헐뜯는 필사의 대결이 아니라 호혜의 사랑싸움이며 공동 승자만을 기대하는 치열한 싸움이다. 작살을 당해야만 찬사를 보내는 난망의 격투, 사랑을 달여 내는 생명의 달굼 질. 그 내밀 적 탐닉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본성에 존재한다. “성 행위는 남성과 여성을 연결해주는 언어이며 두 사람 간 사랑의 표현이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신의 선물이다. 성 행위는 단순히 본능을 충족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간의 심오한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메시지이며 양성(兩性)은 서로 상대방에게 평등하고 보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섹스에 관한 한 가장 인색한 교리를 내세우던 카톨릭교회의 수장, 요한 바오르 2세가 섹스의 현실적 모습을 교시한 바 있다. 생식을 위한 섹스만을 지선(至善)으로 간주했던 카톨릭교회가 레크레이션 섹스를 인정한 획기적인 사건이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정정만 박사 (성칼럼리스트, 비뇨기과 원장)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사람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