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광진 문협 박부회장님의 소개로 사색의 향기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문학기행에 참가하게 되었다. 일정은 7월 12일 토요일 아침8시에 덕수궁 앞에 모여 관광버스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 비가 올 조짐이다. 일행 중에 예비역 육군 소장이신 윤항중 회장님을 소개 받고 출발부터 활기 찬 분위기 속에 일행 40여명이 목적지인 전북 부안을 향하여 출발했다. 이번 일정은 고 신석정 시인의 고택인 청구원과 그의 시비, 그리고 매창공원 안에 있는 매창 묘소와 시비를 보고 변산 국립공원과 새만금 방조제를 드라이브 하고 채석강을 둘러보고 온다는 일정이다. 차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부안에 12시경에 도착하고 신석정 시인의 고택 앞 정자에 모여 앉아 신석정시인에 대한 상세한 강의를 김경식 시인에게 들었다. 너무나 준비를 착실히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신석정 시인에 대한 재조명의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신석정 생가는 원형대로 복원하여 놓았고 그 앞에 문학관을 지으려고 넓은 터를 지방자치회에서 사 놓았다고 하며 몇 년 후에 다시 와 보면 지금보다 훌륭한 문학관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 하나 지금은 안내인 하나 없고 생가라고 지어 놓은 썰렁한 초가집 한 채 뿐이다. 이 근처에 김제시 부량면에 아리랑 문학관에 소설가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문학 박물관이나 군산시에 있는 소설가 채 만식의 문학관도 그럴싸하게 건물만 잘 지어 놓았으나 볼거리가 미미하여 보러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지면을 통해 알고 있다. 2000년 이후 지자체가 앞 다퉈 우후죽순처럼 곳곳에 문학관이 난립 하고 2007년 현재 전국에 총 33개( 문학관 협회 가입 기준)라고 한다. 그 많은 문학관 중에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손꼽을 정도 이고 그 이 외에 는 문학관 만 덜렁 지어 놓고 예산 부족 이유로 운영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고 더 더욱 볼거리마저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고 보면 관람객의 발길조차 끊어지는 게 현실이고 당연한 것 아닌가. 이곳도 그런 실패한 전철을 밟을까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며 그 곳을 나와 시내 중심지에 있는 식당으로 나왔다. 당시 기억으로는 조그마한 시골 면소재지 정도라고 생각 했었는데 이거야 번듯한 중소도시가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보고 식사를 마치고 시내에 있는 매창공원으로 갔다. 지금까지는 쨍쨍한 날씨였는데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뒤덮더니 번개와 천둥이 무섭게 쳐 소나기가 내리 퍼붓는 게 아닌가. 차 밖을 못나가고 한동안 차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이번 여행의 좌장격인 이상보 박사의 해박한 지식 속에 이 매창 시인에 대한 이야기와 시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대개 이조시대의 여류시인들은 대부분 기녀들이란 것 이매창도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 시인 중에 하나였고 당시 부안 현리였던 이탕종의 딸로 태어났다. 매창공원 안 그의 묘비 주변에 시비가 여기저기 놓여 있어 지나는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 일행 중에 이매창의 시조 이화우(梨花雨)를 낭송하여 경청하였다. 이화우 훗날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우리 일행은 이곳을 나와 변산반도 쪽을 향하여 달렸다. 우리 차는 내 변산 쪽으로 들어가 직소폭포가 내려오는 곳을 막아 부안 땜이란 것을 만들어 놓아 마치 호수같이 산수가 한 폭의 동양화같이 절경 이다. 내가 보았던 옛날에는 절벽과 멀리 폭포가 있었는데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산천도 변하여 호수가 생겨 산수가 어우러져 참으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이곳을 보고 가다보면 바닷가 ‘해창’이란 곳이 나온다. 거기에 신석정 시인의 시비가 바다를 뒤로하고 길가에 있다. 우리 버스는 그곳에서 멈추고 단체 사진을 찍고 시비에 있는 ‘파도’라는 시를 누군가 낭독했다. 갈대에 숨어드는 철 그른 우리 차는 다시 새만금 방조제를 향하였다. 말썽도 많았던 방조제 여의도 면적의 140배라는 어마어마한 땅 덩어리가 생긴다는 방조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쪼그마한 땅덩어리가 커진 다는 데 나는 무조건 찬성 쪽이다. 알고 보면 김제에 있는 우리나라의 최대의 곡창인 만경 평야도 바다를 막아 생긴 평야라고 들었다. 이 방조제가 완성된다면 실보다 득이 많은 것은 자명한 이치. 농토는 말할 것도 없고 공장지대와 다가오는 서해안시대의 총아로 각광을 받을 것이고 한편으로 관광산업도 지역 경제에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방조제를 버스는 달린다. 책을 쌓아 올린 듯한 퇴적암층이 바닷물에 침식이 되어 노출된 암층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그곳에 앉아 보고 있는 나는 어느덧 저무는 노을처럼 바다에 기우는 낙조를 보고 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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