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카페지기 김경식 시인의 매서헌(梅書軒)을 보고 추풍령의 30년 전 영운당(嶺雲堂)을 매서헌 사진에서 보았다. 고무의 댓글을 올린 것이 인연이 되어 진실은 서로 영으로 통한 다고 나의 옛 모습이 김 시인의 하는 일에 미력이나마 참고가 될 것 같아 영운당을 안내하고 매서헌을 보고 싶었다. 서로 의기투합 하여 어려운 시간을 내 김 시인과 김 시인 의 죽마고우인 최석주 사장과 함께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나의 고향 충북 영동(永同)을 향하여 떠났다. 모처럼의 나들이다. 지난겨울은 유독 매서운 한파에 감히 나들이를 삼가 했다가 조금은 빠르나 그래도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 한껏 봄 기분을 만끽하고 脫 서울, 고속도로를 달리니 상쾌하고 여행 기분에 들뜬다. 여행에서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먹거리 또한 중요한 것, 생소한 손님들을 우리 고향에 안내하는 마당에 우리 고향 특산 먹거리인 올뱅이(다슬기)국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여행을 많이 하여본 두 분에게 이해하실 것 같아 무조건 옥천 올뱅이집으로 안내했다. 옥계폭포 우리 고장 영동하면 양산 8경을 위시하여 볼거리도 많으나 촉박한 시간관계로 가는 도중 옥계폭포만을 안내 하기로 작정하고 국도에서 조금 들어가 있는 제법 폭포다운 면목을 갖춰 우기 중 수량이 많을 때는 내리꽂는 물줄기가 가히 볼만하다. 두 분에 보이고 기념촬영, 그리고 나와 심천 용당리(深川 龍塘里 용이 못에서 올라갔다 해서 용댕이라 한다) 고향을 보여주고 추풍령 영운당을 향하여 갔다. 우리 고향에서 40여리 떨어져 있으나 같은 영동군이고 더더욱 용당리 선산에서 조부모님을 영운당 천산에 모셔 제2 종중산을 만들어 놓았으니 영운당은 나에게는 제 2고향이다. 아니 영운당은 내 분신이다. 영운당 청산에 올라와 30여년 가꾼 영운당.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내 정성과 혼이 녹아 묻어 있고 나의 문학 산실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영운당이 초기에 있어서는 지금의 매서헌과 너무 같아 매서헌의 출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어려운 여건을 극복 하고 30년 후의 매서헌을 이곳에서 상상하여 보시라고 초청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운당에 들어서니 따사로운 봄빛아래 미선나무 꽃이 활짝 피어 그 은은한 향이 나를 감싸 반긴다. 고향에 돌아왔다. 어머니의 품속 같은 영운 당. 이른 봄의 전령사인 미선나무 향이 우리를 인도한다. 김경식 시인의 탐방 기념식수 미선나무는 생소한 나무에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특히 충북사람들을 제외하고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충북 사람들 중에서도 이 나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매서웠던 겨울 가고 봄의 문턱에서 제일 먼저 미선나무 꽃이 봄을 알리고 다음은 생강나무, 산수유, 매화, 진달래, 개나리, 화사한 벚꽃 순 이다. 4월 말에야 영산홍이 만계하면 봄의 절정이다.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충북 영동과 괴산. 증평에서만 자생하고 1속(屬) 1종(種)으로 천연 기념물 220호로 지정 되여 보호를 받고 있다. 미선나무 군락지 흰 개나리꽃 모양이나 열매가 부채모양으로 생겨 미선(美扇)나무라 이름 부쳐지고 꽃이 필 때 풍기는 향(香)은 그 은은함과 그윽함이 풍난(風蘭)에서 나오는 향에 버금간다. 원래 나는 영동이 고향이며 우리 고향이 세계 유일한 미선나무 자연 군락지가 영동에만 있는 줄 알고 자못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고 추풍령 영운 당에 어렵게 구한 미선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꺾꽂이가 안 되고 변식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실행차고 하기 여러 번 결국 미선나무 가지를 중간쯤 땅에 휘여 묻어 두면 흙에 묻힌 중간에서 실뿌리가 내려 이것을 적당히 잘라 옮겨 심으면 번식이 가능 하다. 이 번식기술을 터득하고 얼마나 기고만장 하였는지 그 당시의 기쁨은 하늘을 찔렸다. 오죽 하면 나의 첫 시집 표재를 감히 “미선나무‘라고 했던가. 영운당의 가을 지난 늦가을에 이곳에 와 보고는 오늘 김시인 과 최 사장과 같이 올해는 처음으로 영운 당을 찾았다. 그간 동생이 정성들여 봄 치장을 부지런히 하여놓아 말끔하게 정돈이 되어있는 영운 당, 이제는 동생이 형을 대신하여 영운 당을 가꾸고 있다. 영운 당에 김 시인의 기념식수를 하고 천산에 올라 첩첩히 뻗어 흐르는 백두대간의 위용을 바라보니 하늘을 나는 듯 상쾌하다. 이곳에도 미선나무 꽃이 활짝 피어 반긴다. 봄의 영운당 서둘러 영운 당을 둘러보고 우리는 괴산을 향하여 서둘러 출발했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봤던 매서 헌 보러가는 것이다. 괴산 IC 초입에 미선나무 군락지 먼저 보고 가자는 것이다. 나도 몇 년 전 학계에 알아보니 자생지가 영동과 괴산으로 되어 있었고 그래도 영동이 형님이고 괴산이 아우 정도로 생각 했다. 영동의 자생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허나 오늘 김경식 시인과 최 사장의 고향인 괴산 매서 헌 가는 길에 자생지에 들려 흐드러지게 만계한 미선나무 군락지를 확인하고 기가 팍 꺾인다. 아- 여기에도 이렇게 많은 미선나무가....... 탄식하였는데 한술 더 떠 증평에도 자생지가 있다고 최 사장이 귀띔을 하여준다. 이 씀 되면 이제는 나의 좁은 식견과 아집을 접어야 했다. 미선나무 군락지에서 최 사장과 함께 매서헌에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 김시인 의 꿈이 담긴 매서 헌 보니 과연 30년 전의 영운당과 같았다. 이제 시작이다. 이곳에 꿈을 심어 나가는 김시인 의 투혼을 본다. 미쳐야 한다. 정성과 땀이 흘러 이 땅에 묻어야 한다. 그래야 가구워 놓은 나무가 자란다. 이왕이면 미선나무 고장이니 미선나무도 심으라고 권했다. 꿈이 있는 매서헌 괴산(槐山) 오면 꼭 들려 보아야 할 곳으로 미선나무 자생지와 수령1000년의 느티나무를 보지 않고는 괴산을 와 봤다고 하지 말라는 권유에 어두움이 깔린 길섶을 지나 면소재지 근처에 있는 느티나무를 보았다. 느티나무 새 구루가 있는데 너무 어마어마하게 커서 말문이 막힌다. 한마디로 저건 나무가 아니라 목신(木神)이다. 라고 나는 외쳤다. 하기야 나무 둘레에 칭칭 감은 집동아 줄에 주렁주렁 천 끈이 바람에 나부끼고 마치 목신을 추앙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서헌 서가 김시인 의 말에 따르면 괴산(槐山)라는 괴(槐)자가 느티나무 괴(槐)라는 것이다. 과연 듣고 보니 이 고장을 괴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저 유명한 느티나무 때문인 것을 이제야 알만도 했다. 보려가는 길에도 곳곳에 미선나무가 만개하여 과연 이 고장도 미선나무 자생지다웠다. 최 사장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들려 모처럼 신선한 무공해 채소에 푸짐한 저녁 대접을 받고 귀로에 올랐다. 나의 졸시 미선나무를 이 글에 다시 한 번 소개한다. 해거름의 느티나무 고목 미선나무 최단 봄을 여는 꽃 인가 미선나무 꽃잎에 그윽한 꽃향기 영운 당을 감싸고 아직도 겨울은 미련이 남아 눌 의산 정상에 잔설(殘雪)이 있는데 꽃향기 품어 내니 벌써 봄은 와있네 꽃샘바람 아랑곳 하지 않고 개나리 같은 꽃대에 오밀 조밀 송이송이 작은 꽃송이 청아한 샘임 새로 그윽한 향기 품어 낸다. 신기 하여라 가까이 다가가서 피어난 꽃잎에 입 맞추면 이다지도 감미롭고 참으로 꽃향기 황홀하여라. 미선나무 군락지 2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저작권자 ⓒ 뉴스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사람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