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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눈으로 표출된 잊혀 진 여인의 표정

엠디저널 | 기사입력 2014/01/09 [16:23]

[Painting] 눈으로 표출된 잊혀 진 여인의 표정

엠디저널 | 입력 : 2014/01/09 [16:23]

프랑스의 여류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1956)은 파리의 평범한 중류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멜라니-폴린 로랑생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어촌 출신으로 스무 살 무렵 파리로 상경 부유층의 남자를 만나 로랑생은 낳았으나, 그 남자는 유력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여 결국은 ‘숨겨진 여자’의 신세가 되어 사회와의 관계를 일체 끊고 비밀스럽고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로랑생을 키워왔다. 이렇게 남다른 출생과 성장기를 겪어야 했던 로랑생은 그녀의 성격과 사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로랑생은 처음에는 윙바르의 회화연구소에서 소묘(素描)를 배우면서 ‘바토-라부아르에 Le Bateau-Lavoir’라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집에도 출입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피카소나 브라크, 마티스 같은 거장들을 알게 되고 아폴리네르, 살몽 등과 같은 시인들과도 알게 되었다.
그들 중에서 지기와 같은 처지의 사생아이었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들이 ‘바토-라부아르’에 출입했던 5년의 기간은 두 사람 모두의 예술적 재능이 만개한 황금기였으며 또 그들의 사랑도 그만큼 무르익어 갔다.

이 무렵의 그녀가 그린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1909)이라는 그림에는 그들의 다정했던 관계를 보여준다. 이 그림의 중앙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하고 있는 이가 아폴리네르이며 그림의 우단에 청록색 정장을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로랑생이다. 아폴리네르의 좌측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다리가 두 사람이 무수히 오고 가며 사랑을 나누었던 미라보 다리인데 그녀는 이를 상징적으로 그려 넣었다. 또 아폴리네르의 바로 우측에는 자기들을 결합시켜준 피카소이며 그 바로 우측에 있는 여인이 피카소의 애인 페르난도 오리피에이다.

이 그림은 입체파의 기본 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불그스레한 장밋빛 조명을 화려하게 받은 묘한 표정의 얼굴들은 우정이 무르익은 분위기로 흥겨움을 은은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우여곡절 끝에 또 각자의 강한 개성 때문에 둘 사이가 좀처럼 풀리지 않게 되자, 1914년에는 결별하게 되었다. 그녀와 이별은 하였지만 그리움이 사무칠 때면 그 감정을 억제 할 길이 없어 써 내려갔다는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라는 시는 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파리와, 센 강 그리고 이별의 낭만을 이야기 할 때면 떠올리게 되는 유명한 시가 되였다.

미라보 다리 (G. 아폴리네르 작)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 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이하 생략)

이 시와 로랑생의 그림에 상징적이나마 ‘미라보 다리’를 그려 넣었던 것을 보면 이들은 이 다리를 놓고 어떤 느낌을 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이 무렵에 그녀가 그린 자기의 ‘자화상’(1908)이나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1909) 은 당시의 야수파나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그림의 선이 거칠고 색채도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러했던 그녀의 그림이 아폴리네르와 이별한 후에는 돌변하여 앞서 그린 그림의 사조와는 전혀 다른 나름대로의 새로운 그림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그린 ‘발렌틴’(1924)을 보면 그녀 특유의 소녀적 감수성, 시대적 서정과 밝은 회색, 엷은 분홍색, 밝은 청색 등을 조화롭게 사용한 깊이 있고 감미로운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매혹적인 색조로 변해 버렸으며 가장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델의 눈의 대부분은 검은 동자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렇게 크고 검은 동자의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있어 애수어린 과거를 회상하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그림의 표정은 화가의 개성이 나타난 것으로 당시의 화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을 보인다. 이 그림은 작품은 작가를 대변한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즉 그녀가 사라온 과거, 사고방식, 감성, 재능 등이 그림 전체의 요소요소에 스며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작품 ‘강아지와 여인’(1924)을 보면 커튼과 보조를 맞춘 듯이 리본이 달린 하늘하늘한 무희들의 옷을 입고, 수줍은 듯 불그레한 볼을 한 아름다운 소녀들과 함께 귀여운 강아지 그리고 앞서 그림과 같은 매혹적 색조들이 이 그림을 꿈결같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으나 왠지 모르게 여인의 어두움이 그림 저변에 감도는 것 같다.

특히 소녀들의 눈의 검은 동자는 먼저 그림 보다 더 심하게 눈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표현되어 마치 외계인처럼 검은 동자만 있는 것이 다소 불안하고 단순하기도 하지만 묘한 일종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하여 소녀의 이미지를 가중시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 ‘푸른 리본의 여인’(1938)을 보면 이 작품은 먼저의 작품들보다 나중에 그려진 작품으로 그녀만의 개성이 더 무르익어 잘 살아나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여인의 관능이 은은히 내비추어 부드러운 분위기와 전술한바있는 매혹적 색조는 매력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역시 눈의 표현은 먼저 그림들과 같이 검은 동자가 눈 전체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시선이 밑으로 깔리고 있어 애수어리고 가련한 여인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그 신비하고도 어두운 분위기가 쉽게 가시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시 ‘잊혀진 여인’이 떠오른다.

잊혀진 여인
권태로운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슬픔에 젖은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어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는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버림 받은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 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그녀의 이 시를 읽고 나니 왜 그림의 여인들의 눈의 검문동자가 그리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표현되었는가를 알 것도 같다. 원래 슬픔이라는 감정은 그 단독으로 느끼게 될 경우도 있지만 불안, 화남, 행복, 자기혐오, 수치 등의 감정과 혼합되어 표출되기도 한다.

또 원래 슬픔의 얼굴표정은 추미근과 전두근을 움직여 눈썹이 밑으로 처지면서 표출 되는 것인데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앞서 기술한 다른 감정과 혼합된 감정표출의 경우는 얼굴의 다른 부위로 표출시키기 보다는 눈의 검은 동자를 통하는 것이 간접적이지만 육감적이라 생각된 화가는 이러한 혼합감정의 표현을 눈의 검은 동자의 모양과 크기로 표출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것을 그녀의 시 ‘잊혀진 여인’을 음미하고 나면 납득이 되는 것 같다.

‘잊혀진 여자’의 복잡한 과거의 추억을 더듬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검은 동자는 나름대로 커질 대로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 아닌가싶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문국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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