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초조대장경展’을 보고
엠디저널 | 입력 : 2013/12/31 [18:40]
고궁 박물관 전경
친구인 유천(悠天)에게서 11월 17일 뜻밖에 메일이 왔다.江村 오늘 고궁박물관 초조팔만대장경전에 갔었소. 외침 위협 속의 천 년 전 환경을 생각하면 신비할 뿐이오. 점심시간이 되어 고궁 뜰에서 정취를 즐겼소. 궁중호박요리에 와인 한잔 곁들이며 왕을 연상했지요. 悠天
홍예문
항상 내가 먼저 전시장들을 다녀와 메일로 보고 하던 처지인데 이것은 완전히 뒤집힌 꼴이 되어 한방 얻어맞은 기분, 친구가 보넨 메일을 보고 당장 가보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하다가 11월말, 오늘에야 비로소 시간을 내서 박물관을 찾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경복궁 앞 홍예문을 헐고 그 자리에 일본의 식민지 총독부를 세워 경복궁 앞을 가로 막아 궁으로써의 면목을 지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을 헐어내고 경복궁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한 것은 보면 볼수록 잘된 일이라 생각 한다. 처음에는 말도 많아 헐어내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으로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는 의지로 헐고 광화문도 제자리에 복원하고 일제시절에 많은 부속 건물을 헐어낸 것들을 문헌을 통해 하나하나 찾아 제자리에 복원을 하고 있다니 다행한 일로 우리민족의 얼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 한다.
광화문
언제 보와도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북적거리고 경복궁 앞에 이조시대 옛 복장을 한 고궁 의장대 사열에 신기한 듯 인파가 몰려 구경들을 하며 사진 찍기에 열을 내고 있다. 고궁 박물관 앞은 광엽수 입은 다 지고 침엽수인 소나무만 푸르다. 이 건물도 경복궁 한 옆에 자리하고 있으나 언제인가는 다른 마땅한 곳으로 이전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오랜만에 지인인 박 선생을 맞나 같이 전시장에 들어갔다.
초조대장경
문화재청 발족 50주년 및 초조대장(初雕大藏經) 판각이 시작된 지 서기 1011년(고려 현종 2년) 지금이 2011년이니 꼭 1000년 되는 해이다. 이을 기념하기 위하여 2011년 11월15일부터 12월18일까지 34일 동안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 전시실에서 한다고 하니 친구가 가본 날이 시작 이틀 만에 간 것으로 보와 충청도 사람 치고 동작 한번 빠르다고 혀를 찾다.
초조대장경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번 전시회가 일반에 공개되는 마지막 기회라고 알려져 팔만대장경판을 실물로 보는 것은 이번밖에 없음을 알고 관람객이 많은 것 아닌가 생각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고려 성종10년(991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한언공(韓彦恭)이 귀국하면서 처음으로 대장경 한질을 가지고 왔으며 이 대장경은 불교진리의 집대성의며 경전이다. 이를 토대로 고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불심으로 물리치기 위한 염원에서 판각 되었다고 하며 처음으로 새겨 졌다고 초조대장경이라 부른다.
재조대장경 목판
초조대장경은 현종 2년에 시작하여 선종 4년까지 70여 년 동안 6천여 권을 판각 되었으나 고종 19년에(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전부 불타 소실되고 역사 속에 살아졌다고 생각 하였으나 그 후 700여년이 지난 1965년 일본 교토 난젠지(절)의 수장고에서 오래 동안 감추어졌던 고려 초조대장경 일부가 발견되고 또한 각 지방과 대마도등에서 합쳐 2500여권, 우리나라에서도 300여권이 다수 발견되어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며 이것들은 모와 체계적으로 전산화 식혀 6년여에 걸쳐 고려시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는 주최 측의 말이다. 그 첫 결실로 이번 전시회에 100여권의 고려 초조대장경을 선보인다고 하며 나머지 것들도 복원할 기획이라 한다.
복원된 초조대장경
이 최초의 목판 대장경은 북송 때 만들어진 개보칙판(開寶勅版) 대장경 (971~977)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한역 대장경은 여러 나라에서(티베트. 몽고. 베트남 등) 번역 된 것 중에서도 한자로 된 한역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며 목판인 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완전히 가춘 것으로 세계 기록문화유산인 동시에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인 동시에 불교문화제 이기도 하다. 더불어 해인사 소장의 재조대장경의 근간이 되는 초조대장경은 다라니경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대장경 목판 만들기 과정
팔만대장경은 판수가 8만 여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되는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 이라하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목판에 새긴 것이다. 재조대장경 중 이번 전시를 위하여 국보급 및 보물급으로 지정된 것 중 귀중한 것들을 출품하여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된다.
목판각하는 과정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국보 제243호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初雕本 顯揚聖敎論 卷11)과 국보 제 266호 초조본 대방광 불화염경 주본 75(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그리고 국보 제32호 합천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등을 비롯해 국보급 19점과 보물급 13점과 총 51점 등을 공개하였다고 하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실물로 팔만대장경을 보는 것이 의미가 깊었고, 과거 천 년 전의 기록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미래 천년을 그려보는 값진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만든 지 천여 년이 흘러 그동안 많은 국난들이 겹치고 겹쳐 용케도 잘 보존된 것을 생각하면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다른 우리 국보급 문화제들이 전란 등으로 소실되고 외국에 강탈되어 지금도 타향에서 떠도는 우리의 귀중한 유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가슴 아프다. 보고 나오면서 친구 유천(悠天)이 하던 데로 점심을 궁중 호박 요리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궁중 뜰 악의 정취를 줄기고 전철에 올랐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최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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